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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Sep 02. 2022

퇴사?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4

  '허 선임! 진짜 로또라도 된 거 아니야?'

  '우리 아무도 몰랐는데, 건물주였던 거 아니야?'


  내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가 준재벌이라거나, 당첨된 로또 한 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농담같이 떠드는 말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이직도 아니고, 사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대책 없이(나에게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듯했다) 직장생활을 그만하겠다는 사람이 마냥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참 좋을 텐데 그건 아니다.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가정이 있는 직장인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퇴사는 혼자서 뚝딱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족 전체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내 월급에 가족의 생활 수준이 결정되고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과 야근과 특근의 강도, 출장의 빈도 등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영향을 준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아파트?)도 내 퇴사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같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 많은 이는 집과 관련된 은행 대출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몇 억에 이르기도 한다. 어쩌면 직장인들의 새로운 도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은행일 것이다. 매달 은행에 줘야 하는 만큼의 돈이 없다면 퇴사는 불가능하다. 아이가 있는 직장인이라면 교육비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한창 사교육이 필요한 시기라면? 지출을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퇴사 이후 밥벌이 계획이 없다면 퇴사는 물 건너간 것이다. (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직장 동료들이 로또를 거론한 것도 이런 이유다. 밥벌이에 대한 대책이 없이 퇴사하는 건 분명 무언가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결국 돈이 문제다. 돈은 가족의 생활 방식을 결정하는 요소이기에 가족과의 합의도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퇴사 이후에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대해 가족, 특히 아내의 동의를 받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내 퇴사 이후 계획이라는 건 사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대학 강의를 해보겠다. 글을 써 보겠다. 장차 스마트 농장을 생각해 보겠다. 등등.


   '음... 그래,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퇴사하자.'


  내 얼토당토않은 말에 대한 아내의 대답은 바로 이거였다. 매달 꾸준히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는 핀잔을 듣지 않은 것이 기뻤고 내 말과 계획을 믿어주는 게 고마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도대체 뭘 믿고 동의해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막연한 퇴사 이후 계획이 맘에 들었을 리 없다. 혹시 축 늘어진 내 어깨, 가끔 한 번씩 내쉬던 깊은 한숨, 퇴사 이후에 삶을 말할 때 반짝이던 내 눈빛 같은 것이 아내의 결정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맘이 쓰였다. 한편으론 지금까지는 믿음을 주는 가장이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는 건 행운이다. (Photo by Luemen Rutkowski on Unsplash)


  외벌이를 하는 남자 선배들이 내 퇴사 소식에 제일 궁금해했던 부분이 바로 '아내가 동의를 했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않느냐는 내 대답을 들은 그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내뱉은 말이 바로 이거다.


  '너보다 아내 분이 더 대단하네, 난 집에서 퇴사 이야기 꺼내지도 못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남편이 도전한다는 걸 믿어주고, 받아주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패턴이 모두 바뀔 수 있는데도 선뜻 내 생각에 동조해 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이런 가족을 위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본다.



  계획대로(막연한 계획?) 잘해서, 돈은 지금보다 못 벌더라도(아마 99% 이상의 확률로?) 우리 가족의 행복 지수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게(과연?) 하리라!




(표지 Photo by Etienne Boulang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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