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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Jul 11. 2020

날 내친 회사에 다시 입사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

  "휴.. 그래도 너무 하시네요."


  정규직 전환 계획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음 주면 계약 만료인데 일주일을 앞두고 받은 통보, 당장 앞길에 대한 걱정보다도 배려가 전혀 없는 회사의 처사에 화가 났다. 계약 만료 이후를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다니 말이다. 한데 생각해보니 회사에서는 인턴사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공식적으로 약속적은 없었다. 혼자 망상을 하고, 혼자 성을 낸 꼴이었다. 입맛이 썼다.


  2009년 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짜리 일이었다. 그 회사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선배의 소개가 있었고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뭘 해야 하는지 별 생각도 없던 터라 별생각 없이 지원했다. 운이 좋았다. 월급은 적었지만 일은 재미있었다. 특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았다. 그 누구도 인턴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어떨 때는 마치 전문가로 대접해주는 느낌도 들었다. 인턴이었지만 신이나 일했고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보람도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정직원보다 낫다는 말, 일을 잘하니까 곧 정직원이 될 거라는, 그런 말들을 듣게 된 시점 말이다.


  그 말이 독이 된 것일까? 아니다. 나를 칭찬해 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아, 물론 가끔 열심히 일 하라고, 그럼 정직원이 될 거라고, 자기만 믿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우쭐대며 말하던 사람들이 있긴 했다.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우둔했다. 내가 원하는 데로 그들의 말을 들은 것이 문제였다. 스스로의 주제를 모르고 계약 만료를 1주일 앞두고도 이 회사에서 계속 일 할 거라고, 나 같은 인재를 당연히 잡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근무일인 2009년 12월 31일. 그날은 종무식이 있는 날이었다. 보통의 회사가 그렇듯 직원들이 한 해 동안 고생했다며 서로와 인사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수 직원에 대한 포상  준비된 막걸리를 서로 권하며 마시고 떠드는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있을 자리는 아니었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사람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배려심이 없는 회사에 분노가 일었다. 종무식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지만 난 사무실에 올라가 조용히 짐을 챙겨 아무도 모르게 집으로 향했다. 다시는 스스로 오만하지 말자 다짐했다. 그때는 말이다.


  그 이후 며칠은 멍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늦잠을 잤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봤다.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했었는데... 난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있지도 않은 것을 얻으려 했으니 실패는 아닌가? 그냥 착각이었나? 혼란스러웠다.


 그 무기력에서 날 끌어올린 건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 친구였다. 위로와 윽박이 적절히 조화된 그녀의 말에 다행히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는 스스로의 마음에 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일자리 찾기를 시작했다. 몇 군데 회사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가 인턴을 했던 그 회사에도 다시 원서를 냈다.


  “거기.. 붙으면 다시 갈 거야?”

  “당연히... 가야지.


  여자 친구가 물었고, 난 답했다. 사실 정규직 전환 계획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이후, 날 챙겨주던 선배 한 명이 나를 따로 불러 해준 말이 있었다. 조만간 채용이 있을 거라고.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인정을 받았으니 아마 잘 되지 않겠냐는 개인 의견을 덧붙이면서. 회사에 약이 올라있던 나는 퉁명스레 얼버무리고 말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곳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리고 그 선배의 말대로 조금은 더 유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결국에는 원서를 내고야 마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다.


  한 달 후, 난 나를 내친 그 회사에 다시 입사했다. 전에 같이 일하던 회사 동료들은 잘 된 일이라며, 그럴 줄 알았다며 나를 반겼다. 나도 웃었다. 잘 부탁한다고 다시 인사를 했다. 다시 올 일이 없을 거라며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던 종무식, 그 날을 나는 이미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칭찬하는 그 동료들 사이에서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내 우둔함과 오만함을 탓하던 나 자신을 다시 잊고 나는 다시 또 오만해졌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일했고, 지금은 어느덧 중간 관리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2009년 12월, 그때처럼 오만하다. 마음대로 판단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에 낙담하며 자책한다. 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다시 오만해지고 곧 다시 낙담하고 자책한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리거나 승진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실패했다고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나 자신에 대한 관대함과 오만함과 그 이후에 돌아오는 낙담과 자책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예전의 경험에서 무언가 배우지 못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정직원으로 회사에 남지 못한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스스로 오만하게 군 것이 바로 직장 생활에서의 첫 번째 실패였다. 내친 회사에 다시 입사한 것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지만 그때 마음을 잊는 것은 또 다른 실패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일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실패를 막아주진 않는다. 난 앞으로 계속해서 오만하고 다시 낙담하고 자책할 것이다.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겠지만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다만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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