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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테드 Feb 06. 2022

진라면 냄새로 안부를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3



코리빙 하우스 내 다양한 공간 중 가장 사람을 많이 만나는 곳은 주방일 것이다. 방에서는 조리를 할 수 없어서 필연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결국 ‘밥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 명씩 모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간단하게 ‘맛있게 드세요’부터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요’까지 다양한 인사들로 이웃들과 안부를 나눈다. 



그쳐? 뭔가 그런거 같죠? (C) KIMONG



M은 매일 12시 언저리에 점심을 해 먹는다. 그래서인지 나름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M과 테드가 처음 대화를 하게 된 건, 이런저런 스케줄로 바쁜 날 짬을 내서 테드가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때였다. 이전까지는 사실 통성명도 안한 사이였다. 여기 사는 사람이겠거니하고 서로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간단한 ‘안녕하세요’는 몇 번 했었는데, 어느 날 M이 갑자기 테드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혹시 김치 드릴까요?


테드는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에는 어줍지않게 얼버무리는거보다 확실하게 의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름 빠르게 그리고 친절하게 디테일까지 첨가해서 대답을 했다.



아뇨 괜찮아요... 김치 안 좋아해서


M도 테드도 모두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둘 다 적지 않게 당황했기 때문일 것이다. M은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라면에 김치가 필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테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누군지 이름도 안 밝히고 갑자기 김치부터 들이밀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테드는 별로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건 그의 오랜 타지 생활을 가능케 만들어준 나름 자부심 있는 취향이기도 했다. M은 부모님이 집에서 만들어주신 집 반찬과 다양한 밑반찬들을 즐겨 먹는다. 매번 라면만 먹는 것이 불쌍해 보여서 반찬이라도 좀 나눠줄까 고민하다가 오지랖을 부려봤는데, 괜히 후회만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을 시작으로 M은 테드에게 라면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었다. 왜 라면을 자꾸 먹는지, 왜 하필 맨날 진라면 매운맛인지, 요리를 아예 할 줄 모르는 것인지 등등. 그리고 M은 이내 테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진라면은 1988년 출시하여... 30년 넘게 사랑받은 아주 엄청난 라면이다! 무시하지마라!! 패키지도 호안 미로가 했다고...!



이제는 M뿐만 아니라 다른 같이 사는 친구들도 모두 테드가 라면을 끓여 먹는 날의 의미를 알고 있다. 아 진라면 냄새가 나는구나. 오늘 테드가 열심히 돈을 버느라 바쁜 날이구나. 이래저래 정신이 없겠구나. 



부엌에서 진라면 냄새가 나면 그냥 테드가 부엌에 잠깐 머물다 갔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코리빙 부엌은 이렇게 음식 냄새만으로도 대화를 나누게 해준다.



아마도 그 라면 냄새가 머물렀던 그 부엌



너구리는 또 다른 사람의 냄새다. 짜파게티 냄새에 배당된 친구도 있다. 최근에 진라면 순한맛에 배당된 친구도 생겼다. 이렇게 코리빙에 같이 살다 보니, 부엌에서 나는 라면 냄새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안부를 물은 것 같다. 꼭 같이 안 있었어도, 말을 걸지 않아도 말이다. 어떤 공간에서 만날지, 어떤 시간에 만날지 다 같이 맞추려면 참 어렵지만, 이렇게 라면 냄새로라도 서로의 안부를 물어본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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