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낯선 제안을 조심하라

빙산의 일각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지칭하지 않으며, 일부 내용은 서사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떠나려던 시점, 세상은 COVID-19라는 전대미문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전에 없던 혼란 속에서 마스크와 손소독제 같은 방역 물품의 수요는 치솟았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모임 제한령이 내려졌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으며, 손소독제는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코로나 관련 제조 공장을 인수했어. 같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때?"


업종은 제조업, 직무는 관리자, 연봉은 이전에 받던 것의 두 배

제조업 경험은 전무했던 내게 지인의 제안은 낯설었지만 달콤했다.

특히 연봉 협상에 지쳐 회사를 그만둔 타이밍이었기에, 그 제안은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업종이라는 불안감,

그리고 낯설지만 달콤한 제안의 이면에 뭔가 숨겨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지인을 찾아다녔다.

학교 선배, 사회 경험 많은 직장 동료, 팀장님, 그리고 평소 멘토로 삼던 분들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이야기해 봤다. 그들의 조언은 대체로 비슷했다.

"COVID-19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유망한 사업 아니야?" "다니다가 안 되면 나오면 되지, 뭐."


결국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제의를 수락했다.

출퇴근 거리를 핑계 삼아 오피스텔까지 구하며 마음을 굳혔다.


혼자서 이삿짐을 옮기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침대에 누운 첫날밤.

나는 이전에 없던 굉장한 악몽과 함께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우리 회사는 기술 인력을 보유한 신생 OEM 회사였다.

내가 합류할 시점은 공장장님과 제조팀이 본격적으로 제품을 만들던 시기였다.


하루에도 라벨 없는 제품이 수백 개씩 쏟아져 나왔다.

밖에서는 애지중지 구하려는 제품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인증 전 제품이라 판매는 할 수 없었다.

처리할 곳이 없어서 트렁크에 가득 싣고 다니다가 지인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내 업무는 단순했다.

공장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상비약을 구비하고, 철물점과 카페, 가까운 식당에 월 결제 거래를 시작했다.

공장에서 필요하다는 물건을 빠르게 구매해서 전달하고, 여러 서류 절차를 전담했다.


업무는 오전 8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면 끝났다.

업무가 끝나면 공장을 한 바퀴 돌며 문단속을 하고, 공장 철문을 닫으며 퇴근했다.

퇴근 후에는 오피스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주변을 걸어 다녔다.

오피스텔은 주변도 깔끔하고 내부도 깔끔했지만, 첫날밤 받은 싸한 느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특히 지하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주차장은 반층씩 설계된 특이한 구조였다.

엘리베이터 층과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을 반층 오르거나 내려야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차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설 때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을 때,

내가 어느 층에 있는지 전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매번 층계를 오가며 차를 찾아 헤맸다.


깨끗하고 편리했지만 오피스텔에서의 생활은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다.

이때 느낀 왠지 모를 불안과 불편함은 이후로도 몇 번을 느꼈고, 좋지 않은 일을 예지 해주는 징조가 되었다.




불편한 주말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어느새 낙엽도 다 떨어진 늦가을 날씨에 몸이 움츠러드는 아침이었다.

불편함은 여전했지만, 환경이 익숙해지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업무도 얼추 정리되어 가고, 생산 라인과 상하차를 구경할 여유가 생겼다.

우리 공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 제품이 나왔고, 제품은 곧바로 의뢰처에 보내졌다.

서로 주고받은 수령 명세서는 쌓여가는데, 정작 대금 입금은 언제 되는지, 총거래량이 몇 개인지 궁금해졌다.

공장장님도, 물류팀장님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대표인 지인에게 문의했다.


어이가 없었다.


중개업체가 의뢰처를 찾아서 우리와 연결해 주면, 중개업체는 마진을 남기는 단순한 구조.

이 단순함 속에 우리와 중개업체, 의뢰처 간의 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계약서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금도 받지 않고 꼬박꼬박 제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상황이다.)


"대표님, 이번 주 수요일에 계약서 날인하기로 했다고요?"

대표님은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수천만 원대 계약을 진행하는데 이틀 전에도 초안조차 오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항변했다.

날이 선 내 주장에 대표님은 중개업체에 연락을 했지만, 걱정 말라는 대답뿐이었다.





수요일까지 계약서, 아니 최소한 초안이라도 오지 않으면 공장을 멈춰야 합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님은 웃으며 알겠다고 했지만, 그 웃음으로 숨기지 못한 불안이 느껴졌다.

그렇게 수요일이 밝았고, 우리는 결국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회사 철문을 닫았다.


공장 가동 중지 이유는 간단했다.

계약하기로 한 수요일 오전까지 계약서, 아니 초안도 도착하지 않았다.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철문을 닫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중개업자가 들이닥쳤다.

그는 왜 공장 가동을 중지했냐고 우리를 닦달했고, 우리는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답했다.


"공장이 멈추면 납품 수량을 어떻게 맞춰요?"

"계약서를 가져오면 야근을 시켜서라도 납품 수량을 맞추겠습니다."


의뢰업체를 돌려보내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안전 인증을 받기 위한 서류와 시제품을 차에 싣고 출장을 떠났다.


인증 신청을 끝내고 주차장에서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다가, 문득 공장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공장이 아닌 본가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주말을 보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결국 지인은 사기를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의뢰업체와 중개업체가 짜고 친 판의 중심에 우리가 있었고,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의 책임이 되었다.

나는 회사 잔고와 미지급금을 확인했고, 팔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중고로 매각했다.


제조 설비와 제조 인력으로 가득 찼던 회사는 먼지 하나 남지 않았다.

외상 대금을 갚으라는 연락이 빗발쳤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지인 덕에 나는 연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상처가 컸다.


우선 오피스텔을 정리했다.

계약 만료 전 퇴실이라 위약금을 냈고, 오피스텔에서 썼던 가구들을 처분해야 했다.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내가 내야 할 위약금과 헐값에 매각한 가구들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위약금 입금과 공과금 납부까지 깨끗하게 정리된 오피스텔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찾기 어려웠던 차를, 이날은 한 번에 찾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도 운명의 계시인가 싶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래도 몇 주간 내가 살았던 곳을 기억하고 싶었다.

주차장을 나와 근처에 주차를 하고 오피스텔 근처를 한 바퀴 걸으려는데, 이른 겨울의 찬 바람이 느껴졌다.

전에 없이 매서운 첫겨울바람이 나를 스쳤다.


올 겨울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심은 조금 더 단단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매섭고 찬 겨울, 나를 흔들어 버릴 정도의 성난 겨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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