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 일희일비하지 말라

정공법, 회복의 시간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지칭하지 않으며, 일부 내용은 서사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3년 전과 상황은 많이 달랐다.

그때는 지금보다 어렸고 여차하면 돌아갈 곳이 있었다.

지금은 서른을 넘긴 나이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무엇보다 나만의 무기를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날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졌다.

마침 새로 이사 온 윗집에서 전에 없던 층간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원래도 밝은 귀에 모래가루를 뿌린 것처럼 머리와 몸이 맑지 못했다.

생전 처음 원형 탈모가 생겼다.

매주 주사를 맞으러 갔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몸과 정신이 무너짐을 온몸과 온 감정으로 느꼈고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자 안 좋은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원래도 잔 생각이 많은 내게 안 좋은 생각은 독약이었다.

최악의 최악까지 생각했다가 그걸 벗어나기 위한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나 자신에게 병을 주고 약을 주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잠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뭐를 해야 할까.

몸을 피곤하게 하려면 뭘 해야 할까.

낮 기온도 영하의 온도인 한겨울에 나는 역설적으로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공놀이는 좋아했지만 달리기와 웨이트는 좋아하지 않았다.

공 없이는 달릴 이유가 없다는 농담을 했던 나였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결국 달리기밖에 없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견디기 위해 오래된 두툼한 패딩을 입었다.

마스크와 넥워머, 장갑까지 단단히 착용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모두가 따뜻한 집을 찾는 시간에 나 혼자 집 밖에 나섰다.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나 스스로가 창피하고 한심했다.

한겨울에 달리기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정말 방법이 없었다.


찬 바람이 폐 속까지 닿는 느낌을 처음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내 속에 가득 쌓인 무언가를 긁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두어 바퀴를 돌자 땀이 났고 어느새 입고 있던 후드에도 습기가 찼다.

이 정도면 할 만하다는 느낌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반복됐지만,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을 이길 순 없었다.




달리기 효과는 좋았다.

잡생각과 패배감으로 가득 찬 머리가 비워졌다.

우선 머리가 맑아졌고 생활 패턴이 잡히기 시작했다.

밤에 잠이 들고 아침에 깨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에는 이력서를 고쳤고, 점심을 먹고는 채용 사이트에서 직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자란 부분이 무엇인지, 강점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공부하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워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날을 세우기로 했고, 기본적인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던 차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공간서비스 재직 당시 인연을 맺었던 한 대표님이었다.

해외 무역과 중개업을 하시는 분으로 1인 회사를 운영하셨고,

무엇보다 언제 뵈어도 느껴지는 굉장한 여유가 인상적이었다.

제조업으로 이직할 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 보니 궁금했다고 하셨다.

숨길 것도 없으니 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이 대표님은 본업 외에 해외 업체의 제품을 한국에 정식 수입하는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원래 비즈니스도 바쁘신 와중에 부탁받아 시작한 사업인데 생각보다 유망하다고 하셨다.

마침 손이 모자랐는데 잘됐다며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셨다.

제조업에서 실패를 했는데 무역업이라니.. 이게 맞나 싶었다.




그분을 도와 시작한 무역업은 화려함은 없었다.

하지만 통관과 3PL, 그리고 도소매업의 경험은 물론, 온라인 스토어 개설과 운영까지..

비즈니스의 실핏줄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표님께 배운 것은 간단하고도 묵직한 가르침이었다.

주식과 부동산 광풍이 불어닥쳐 모두가 일확천금을 쫓던 시기.

당시 COVID-19로 인한 유동성이 주식과 코인에 흘러들었고 부동산까지 이르렀다.

YouTube와 온라인에서는 주식 고수, 코인 부자, 부동산 투자 등이 파도를 쳤다.

(삼성전자가 십만전자를 목전에 둔 시기였다)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

부동산 갭 투자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혼란한 시기에 다양한 경로로 쏟아지는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귀가 얇아졌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바쁜 시기였다.


그럴 때마다 대표님은 같은 이야기로 나를 안정시켰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가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지인들의 이야기, 무엇보다 혼란을 꿰뚫는 통찰이 백미였다.

대표님이 툭툭 던지는 조언과 가르침은 조급한 나를 안정시키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대표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잔 생각이 많아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끼고 사는 것은 물론,

빠르게 적응하고 배우지만 그만큼 지루함과 싫증을 느끼는 것.

무엇보다 일머리가 좋고 손이 빠르지만,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것.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됐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상처 입은 나를 회복시키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비즈니스의 기본기를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궤도에 다시 들어설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꼼꼼히 검토했다.

그리고 대표님께 조언을 다시 구했다.


그렇게 다시 바다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AI 개발사, 스타트업 그리고 오피스 매니저라는 직무로 나는 다시 항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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