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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itter Feb 06. 2024

성인 ADHD를 벗어나기 위한 일기 - DAY 1

공황장애로 발견된 나의 정신병


나는 원래도 우울의 성향이 강했다. 우울뿐만이 아니라 불안까지도 높은 타입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인생에 닥친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해 그 증상이 점점 심해졌고, 결국 공황장애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어쩌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을지도... 공황장애가 아니었다면 내가 병원에 갔을 일도 없었을 테고, 난 언젠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의 20대 중후반은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병원을 가서 몇 시간에 걸친 검사들을 진행했다. 진단 명은 '기분부전장애', 일명 지속성우울장애이다.

적어도 2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 우울한 기분이 있고, 우울감이 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더 많으며, 이는 주관적으로 보고하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된다.


이내용이 정말 나와 맞는 게 나는 유독 남에게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안 좋아 보여."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이제껏 그게 그냥 나의 인상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의 기분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우선 신체적 증상인 공황장애 치료가 우선이었기에 심리치료보단 약물치료가 우선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의 진단 명을 알게 되면서 느낀 안도감과 약물의 도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물론 우울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공황발작의 빈도수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했고, 두 달 만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병이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원래 이렇게 일을 했다고?


진단 후 다니게 된 회사가 나의 첫 직장은 아니었다. 다수의 아르바이트 경험과 공채로 취직해 1년 반을 다닌 회사에서 나의 업무 평가들은 나쁘지 않았다. 업무를 할 때 끈기 있게 마무리를 하는 편이었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근데 이런 모습의 내가 점점 바뀌어갔다.


업무의 비효율과 집중력 저하

상사가 재촉하지 않으면 쉬운 업무만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의 기본 소양인 '업무 처리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잃은 것이다. 머릿속에 체계적을 그려지던 나의 업무들이 뒤죽박죽 섞기가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을 하다가도 핸드폰에 계속 손이 갔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틀고,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정말 습관적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 습관적인 행동.


이때까지만 해도 성인 ADHD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공황장애 약이 다소 졸리고, 집중력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그렇게 이런 문제들이 3년 정도를 이어갔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해보겠다고, 뭐가 더 급한 업무인지, 데드라인은 언제까지인지, 내가 이 업무를 하면 얼마나 걸릴지 예상을 하고 사소한 것들에도 전부 계획을 세우고 적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시 효율적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과도 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에 의해 생겨난 도파민 중독


그렇게 나는 다시 '일 잘하는' 직장인이 된 줄 알았고, 또 한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코로나19도 함께...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은 나름의 루틴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재택근무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내 손에는 핸드폰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도 해야겠고, 유튜브도 재밌고,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도 없고,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일을 하면서도 노트북 아래 유튜브가 항상 재생되고 있었다. 과연 집중력 있는 업무가 가능했을까? 업무 특성상 체계적인 설계가 중요한데, 그게 가능했을까? 아니다. 타자를 치다가도 눈은 핸드폰으로 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손가락도 멈췄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자연스레 방 침대에 누워 계속 시청을 했다. 이때부터 난 TV를 아예 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쉬는 날이면 시간 아깝다고 2-3시간짜리 영화는 보지 않으면서, 1-2분짜리 영상들을 5-6시간씩 보고 있었다. 난 나의 쉬는 시간이 아까운 게 아니었다. 내 뇌가 쉬는 시간이 아까웠던 거다. 그러니 긴 영상을 보지 못하고, 10초 뒤, 20초 뒤를 누르면서 쉬지도 않고 몇 시간을 핸드폰만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를 보면서 이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도파민 중독'


업무를 하다가도 집중을 못하고 핸드폰을 들었고, 필라테스를 하다가도 쉬운 동작이 나오는 그 잠깐 사이에도 딴생각을 했다. 회의를 하다가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쉽게 흥미가 떨어지면 혼자 딴생각을 하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쉽게 포기하고,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충동구매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매일 하루하루 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뿌듯해했던 나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노력 없는 보상을 바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의 뇌에게 보상, 보상, 보상만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뇌는 게으름뱅이가 되어갔다.


왜 난 도파민 중독에 빠지게 되었을까?



성인 ADHD 확진


이때까지도 계속 병원은 다니고 있던 상태였다. 우울과 불안장애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에게 평소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단기 기억력도 좋지 않아 진 것 같아 업무 할 때 힘들다, 그리고 실수도 잦다, 모든 게 너무 귀찮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성인 ADHD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그렇게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성인 ADHD.


평소와 다르게 진단을 받았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 나는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성인 ADHD까지 있는 사람이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생 족쇄처럼 나랑 같이 갈지도 모르는 이 병들이 무섭고, 싫었다. 그래도 아직 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은... 


어떤 병이 선행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렸을 적부터 ADHD가 있었고, 그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늘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인한 과도한 도파민 의지로 인해 성인 ADHD가 생겼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천천히 고쳐나가면 된다.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는 것보다야 이유라도 알면 해결책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제일 먼저 할 일을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뇌: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나의 스크린타임을 확인해 보았다. 최고치를 기록한 하루 평균 스크린타임은 무려 9시간 42분, 그중 유튜브를 일일 평균 6시간 55분을 기록했다. 그 말은 즉, 난 일주일에 유튜브만 48시간을 보고 있는 사람인 거다. 일주일 중 잠 안 자고 이틀 내내 유튜브 보는 사람... 이게 말이 되나?


우선, 모든 OTT를 구독을 해제했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해지를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잘 때 ASMR을 틀어놓고 자는 버릇 때문이었다. 하루 수면 시간이 인생에서 중요한 편이라, 숙면을 위한 나의 치트키를 과감하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다음은 스크린잠금 어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설정해 놓은 어플에 들어가려면 죄책감이 들게 하는 여러 문장(ex. 승리는 습관입니다. 불행하게도 패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을 내 손으로 입력한 후에, 어플 사용 시간을 설정해야 그 어플을 사용할 수 있다. 솔직히 카톡도 귀찮아서 잘 안 하는 나에게 저 문장 입력은 꽤나 높은 진입장벽이 되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핸드폰을 들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들을 해보았다. 이것은 오늘 한 질문.

1.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지, 근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정말 '유튜브 보기'야? 

2. 새로운 정보 수집을 위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를 트는 거야? 아님 봤던 거 또 보려고 하는 시간낭비야?

3. 인스타그램을 키는 이유가 뭐야? 릴스를 보는 이유는?


1,2,3번에 대한 대답이 영 시원찮아서 하는 걸 관뒀다. 그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어떤 또 다른 자아가 도파민에 의지하려고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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