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itter Apr 23. 2024

사람이 우울할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나다.

난 스스로의 우울감 척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방 상태를 보는 것이다. 평소, 그리 지저분하진 않다. 물건은 누구보다도 잘 버리며, 방에 많은 물건을 두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서랍장도 작은 것으로 구매를 했다. 이런 방에 자잘한 쓰레기와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들과 탈모인가 싶은 정도로 바닥에 머리카락이 넘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내가 우울할 때다.




방 청소

어느 주말, 잠을 푹 자고 일어났는데 하늘은 너무 파랗고, 미세먼지 하나 없이 날이다. 참 맑다. 햇빛은 적당히 방에 드리우고, 창문을 통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얇은 커튼을 스치듯이 지나가고, 산뜻한 나무와 풀 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충분히 이불 빨래를 돌리고, 말리 수 있는 시간이다. 일어나서 이불과 베갯잇을 세탁기에 넣고, 먼지떨이를 가져와 책장에 먼지를 털다가 재미있었던 책을 한 권 꺼내어 본다. 가장 좋았던 페이지를 한번 더 들춰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먼지를 마저 털어낸다. 그리고 책상 위 자잘한 종이 조각들을 정리해 버리고, 이리저리 꽂았다, 뺐다 어질러있던 전선들도 꼬이지 않을 정도로만 정리해서 다시 순서대로 멀티탭에 꽂아놓는다. 눈을 돌리니 비실비실한 화분 두 개가 보인다. 분명 처음 샀을 땐 누구보다 잘 키울 줄 알았다. 아직은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아, 물을 부어주고 햇빛이 드리운 곳에 내려놓았다. 방으로 돌아와 바닥에 먼지 한 톨도 남지 않게 청소기도 돌렸다. 때맞춰 세탁기에서 탈수가 완료되었다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불을 탈탈 털어 널고 있는데, 섬유유연제 냄새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포근하다. 방청소가 어느 정도 끝났다. 아직 밖은 너무 밝고, 환하다.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에 잠시 누워 밖을 보다가 조금 졸린 것 같아 씻기로 한다. 내 머릿속에 쌓인 먼지도 같이 씻어내려 본다. 원래 샴푸냄새가 이렇게 좋았던가? 바디워시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향이 난다. 당연하다. 내가 샀다. 행복한 날은 이런 어이없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행복해한다. 씻고 나오니 방이 더 깨끗해 보인다. 머리를 말리면서 아까 읽다 넣어둔 책을 다시 읽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이불과 베갯잇이 다 말랐다. 매트리스에 각 잡아 깔아주고 포근해진 위에 누워본다. 깨끗해진 방을 보니, 내 마음속이 다 깔끔하다. 매일이 오늘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날은 내가 정말 행복해하는 날들 중 하나다. 이 날을 언급하는 이유는, '사람이 우울할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나다.'에 답하기 위해서다. 깨끗한 방 안에서 행복해하는 '나'를 더러운 방에 그냥 두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방이 365일 깨끗해 본 적이 없다. 내 기분처럼 더러웠다가, 깨끗하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겠다. 깨끗한 방에 내내 있을 때 행복해하는 건지, 더러웠다가 깨끗해지는 방을 보며 행복해하는 건지... 그럼 우울한 날이 있어야 행복한 날이 있는걸 수도?


여하튼! 지금 내 방의 상태는... 더럽진 않지만, 깨끗하지도 않으며 정신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