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포비아_1

스타트업에서 일하기가 두려운 사람의 '바뀌지 않는 것'을 이겨낸 과정.

by quitter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을 배경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프롤로그: 사원증을 걸기 전>


첫 출근날, 사원증을 목에 걸고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복도 끝 유리창으로 아침빛이 쏟아졌고, 내 심장은 계단을 하나 더 오른 것처럼 빨랐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마음속에서 울리던 문장이 또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정말 여기가 내 자리일까."


1화: 두 번의 연애, 결혼을 결심했지만 이혼을 예감했다


처음 회사를 만났을 때 나는 초년의 사랑처럼 굳이 많은 걸 묻지 않았다. 서로 예의 바르게 하루하루를 견뎠고, 안정은 있었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한층 성숙해진 연애 같았다. 이름표가 번듯했고 배운 것도 많았으나, 달력에 동그라미 친 만료일이 우리의 끝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나는 결심했다. 이번엔 오래 가보자. 결혼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스타트업으로 향한 건 그 때문이다. 시작과 끝을 내 손으로 정하고 싶었다. 작게라도 내가 만든 것이 곧장 올라가고, 반응이 바로 돌아오는 곳. 기획부터 제작, 론칭, 그리고 다음 실험까지 한 사이클을 통으로 책임지는 일. 실패하면 다음 스프린트에서 새로 시도하면 되는 일. 무엇보다 결정문에 내 이름이 선명히 박히는 곳. 그게 내가 꿈꾸던 결혼 생활의 풍경이었다.


면접 자리에서 들은 한 문장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마케팅 리더는 외부 채용 예정이에요. 대형 조직에서 브랜드를 굴려본 시니어예요.” 그 말을 들은 밤, 나는 내 미래를 과감하게 덧칠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결을 배우고, 문장 하나 톤 하나를 몸으로 익히고, 몇 년 뒤 톤앤매너 가이드의 첫 페이지를 내가 쓰는 장면까지. 주니어인 나는 여기서 부딪히고 배우며 버티고, 결국 시니어가 되어 있을 거라고—그렇게 믿었다. 아니, 착각했다.



<오지 않는 리더, 그리고 나타난 고인물>

첫 주의 회사는 밝았다. 열댓 명 남짓의 조직, 동그랗게 모여 앉은 킥오프. 이름을 외우는 데 다섯 분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초록 슬리퍼를 끌고 다녔고, 누군가는 책상 위에 손톱만 한 선인장을 키웠다. 팀장은 아직 공석이었다. 모두가 말했다. “곧 오실 거예요. 대기업 출신이시래요.” 그 말은 한동안 이 회사의 비전처럼 공기 중에 떠다녔다.


나는 기다리면서 일을 시작했다. 콘텐츠 기획, 원고 작성, 디자인팀 협업, 플랫폼과 SNS 업로드. 첫 결과물을 올려두고도 한참 화면을 봤다. ‘좋아요’ 숫자보다 더 보고 싶었던 건 팀장의 코멘트였다. 오지 않는 코멘트를 대신해 나는 빈칸을 문서로 메웠다. 러프한 톤앤매너 초안, 지난 캠페인의 잔재에서 뽑아본 말투의 패턴, 간이 고객 여정도. “누가 오든 이 정도면 말이 통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 공지 메일이 왔다. “ㅇㅇ부서의 과장님이 마케팅팀 팀장으로 부임합니다.”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내가 그려왔던 ‘외부 시니어’의 얼굴이 지우개로 지워졌다. 회의실에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반팔 셔츠, 크게 웃는 입. “오래 있었습니다. 회사의 역사, 제가 웬만하면 다 알아요.” 오래 봐온 사람이 가진 감각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그래, 일단 해보자. 나는 서랍에 넣어둔 ‘톤앤매너 초안’을 다시 꺼냈다.




다음 화: <침묵의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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