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eristmas! Merry Cheristmas, Mr. Lawrence!
1983년, 일본 전쟁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크리스마스인 김에..(?)
흔히 전쟁영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독특한 작품이다.
1. 마지막 장면이 주는 무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다. 전쟁 포로수용소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긴장감, 일본군과 포로들 사이의 긴장, 그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욕망의 충돌. 그런데 이 모든 게 마지막 장면 하나로 수렴된다.
종전 후 전범으로 수감된 하라를 로렌스가 찾아간다. 하라는 사형을 앞두고 있다. 그가 로렌스에게 건네는 말,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이 한 문장이 영화의 모든 의미를 완성한다. 증오에서 용서로 가는 여정이 아니다. 적에서 인간으로 관점이 바뀌는 순간이다.
하라는 체제의 가해자였고, 그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지막 웃음은 무죄 선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다시 인식한 순간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해자를 미화하지 않고,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만 열어둔다. 관객이 편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구원이 아닌 깨달음
하라는 구원받았을까?
아니다. 구원이라기보다는 늦었지만 진짜인 깨달음에 가깝다. 그는 전쟁이라는 체제 속에서 가해자였고, 그 무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웃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용서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성을 잃고 살아왔는지를 깨달은 순간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인사가 전쟁 가해자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장면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3. 로렌스의 눈물, 무엇을 향한 것인가
로렌스의 눈물은 하라 개인을 위한 것일까, 전쟁 전체에 대한 애도일까?
둘 다이면서 동시에 하라를 매개로 한 전쟁 전체에 대한 애도다. 로렌스는 하라를 이해했기 때문에 운 게 아니다. 이해해버렸기 때문에 운 것이다.
이해는 화해보다 훨씬 잔인하다. 책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보게 하니까. 그 눈물은 "이 전쟁에서 아무도 완전히 이기지 않았다"는 인식의 결과다. 로렌스는 하라의 인간성을 보았고, 그것이 더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가 여전히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4. 한 문장이 없었다면
만약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는 대사가 없었다면 영화는 어떻게 끝났을까?
차갑다기보다는 미완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증오에서 용서로 가는 스위치가 아니라, 적에서 인간으로 관점을 바꾸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이 문장이 없으면 영화는 전쟁의 구조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고, 인간에 대한 질문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한 줄이 엔딩을 닫는 게 아니라 의미를 완성한다.
5. 음악이 완성하는 감정
테마곡을 만든 사람이 요노이 역의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 내내 억눌렸던 감정이 마지막에 말 대신 음악으로 풀린다.
음악은 슬프다고 말하지도, 감동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냥 남겨둔다. 그래서 엔딩 후에도 감정이 꺼지지 않는다.
이 지점이 내가 전에 썼던 '영화 해피엔드'와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피엔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유타와 코우가 육교에서 헤어지며, 장난치는 손이 선을 넘는 순간 화면이 정지된다. 웃으며 장난치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씁쓸하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도 마찬가지다. 하라의 마지막 웃음과 로렌스의 눈물, 그리고 그 위를 감싸는 사카모토의 음악. 따뜻한 것 같으면서도 씁쓸하고, 끝난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은 여운. 두 영화 모두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이 개입하며 감정을 정리할 틈도 없이 몰아치듯 다가온다.
6. 선을 넘은 채 정지된 의미
해피엔드에서 유타의 손이 선을 넘는 순간 화면이 정지되었다면,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는 하라의 마지막 인사가 선을 넘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선, 증오와 이해 사이의 선, 전쟁과 인간 사이의 선.
그 선을 넘은 채로 영화는 끝난다.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질문만 남긴다.
7. 한국인이 보는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보는 건 복잡하다.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일본군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영화. 그리고 그 가해자의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영화. 이 조합 자체가 한국인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하라의 마지막 장면. 전범으로 사형을 앞둔 일본군이 웃으며 "Merry Christmas"라고 말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서양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일본군은 단순히 전쟁 영화 속 군인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사이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고, 강제징용의 상처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가해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라가 마지막에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로렌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전쟁 범죄가 용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그 경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가해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인간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불편하고, 동시에 더 정직하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일본이 만든 전쟁 영화를 한국인이 본다는 것. 일본군의 인간성을 다룬 영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건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보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주는 불편함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가해자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게 맞는지, 그래야 하는지.
답은 없다. 그저 질문만 남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회복이 과연 구원일까, 아니면 단지 늦은 깨달음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 불편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