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나는 왕가위의 영화 음악을 튼다. 정확히는 이 시간, 해가 완전히 지고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그러면 나는 가본 적 없는 홍콩의 밤을 경험한다.
왕가위의 영화를 몇 번 보고 나니, 홍콩을 가볼 생각이 사라졌다. 오히려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의 홍콩에서는 내가 영화 속에서 본 그 느낌을, 그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서. 네온사인 아래 흐르던 음악, 좁은 골목의 습기, 엇갈리는 사람들의 시선. 그건 1990년대 홍콩의 밤이지, 2026년 홍콩의 밤이 아니니까.
이상한 일이다. 나는 홍콩에 가본 적도 없고, 199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내가 그 시간 속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 좁은 면관에서 완탕면을 먹고, 늦은 밤 택시 뒷좌석에서 스쳐가는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고, 비 내리는 밤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처럼. 내가 경험하지 않은 기억이 생긴다.
이런 경험은 왕가위의 영화만이 아니다.
오아시스의 음악, 특히 1996년 넵워스 공연. 25만 명이 모였던, 전설로 남은 그 라이브. 내가 오아시스를 처음 알았을 때는 이미 그 형제가 결별한 후였다. 영상으로만 봤다. 그 엄청난 함성과 떼창을, 스크린 너머로만 경험했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저때 저 공연장에 내가 있었더라면.'
화면 속 넵워스의 잔디밭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대 위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가 25만 명의 합창과 섞이는 순간, 나는 내가 그곳에 없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웠다. 그 여름날의 열기, 잔디의 촉감, 몸을 흔드는 사람들의 에너지. 그 모든 것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2024년, 오아시스가 화해했다. 재결합 공연이 발표됐다. 하지만 나는 티켓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끌렸던 건 오아시스의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1996년 넵워스의 공기였다는 것을. 그 시대의 열기와 분위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취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내가 2026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동경할 수 있는 건, 그 시대의 기록들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96년 넵워스 공연 풀버전이 있고, 넷플릭스에는 왕가위의 필모그래피가 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무한히 재생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게 이 시대만의 특별한 향수인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그리워한다. 내가 없었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 이상하지만, 이것도 진짜 그리움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한편으론 아쉽지 않다.
나는 또 어떤 과거를 경험하게 될까. 어떤 순간에 내가 마치 있었던 것처럼 몰입하게 될까. 사람들은 미래를 보고 살라고 한다. 물론 나도 현재와 미래만을 쫓아 산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과거의 어느 순간을 경험하면서, 있지도 않은 타임머신 위에 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