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통창 너머로 비가 쏟아졌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다. 카페에 온 지 한 시간쯤 됐을 때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마른하늘에 왠 날비인가. 예상치 못한 일에 머리가 아파왔다. 이 비를 다 맞으며 집으로 걸어갈 생각을 하니 그냥 스타벅스에서 하룻밤 숙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내리 쏟아지던 폭우가 갑자기 뚝 그쳤다. 운명이었다.
나는 느닷없이 '이건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비가 갑자기 그친 이유는'우산이 없는 너는 지금이라도 집에 가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계속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던 결과, 늦은 오후까지 계속 비가 왔다. 운명을 무시한 탓에 스타벅스에서 다섯 시간이나 있어야 했다.
나는 비관적 운명론자다. 인생 속의 수많은 난관에 좌절하면서도, 종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시련 뒤에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쬘 것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믿었다. 인생을 비관하면서 운명을 믿기는 한다는 소리다.
운명을 직시하는 순간은 다양했고 때론 하찮았다. 가령,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비와이의 <Day Day>가 내 귀에 들리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알고리즘이 취향에 맞춰서 적절히 골라 준 노래이겠지만, 그런 건 한쪽 뇌로 흘려보내버리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운명 같은 이 노래의 가사를 차근차근 곱씹어 봤다. 호흡이 빠른 가사에 숨을 멈춘 채 집중했다. 힙합 장르에서 유독 부진한 듣기 실력 때문에 가사를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들리는 대로 종이에 받아 적었다.
'핑계만 가득했었지.
'그때의 난 거짓말쟁이.'
'어제의 나를 바라보지 않네'
'영혼이 가는 대로 가'
'큰 꿈을 시작해'
'이제 꿈을 이뤄줄 차례'
'핑계는 그만 대고 영혼이 원하는 대로 꿈을 쫓아가자'. 꽤 괜찮은 노래라고 생각하며 전체 가사를 검색했다. '어제의 나를 바라보지 않네'가 아니라 '어제의 날'이었다. 과거도, 과거의 나도 바라보지 말자는 뜻이리라. '큰 꿈을 시작해'는 '큰 꿈에 집착을 시작해'였다. 꿈을 꾸지만 말고 꿈에 집착해서 반드시 이루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역시 이 노래를 오늘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요 며칠 동안 친구와 사업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도전할 결심을 했음에도 마음 한편은 불안했다. 그러던 차에 이런 노래가 나오니 꼭 사업을 하라는 계시처럼 들리지 뭔가.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강철의 연금술사(브라더후드를 봤다)를 인생작으로 삼은 나는 삶은 등가교환이라는 법칙이 지배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불행은 행복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불행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계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드시는 아닐지라도 운명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법칙을 성실히 수행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동물이다. 그 와중에 나는 그런 본능을 더 크게 타고난 사람이었다. 나는 겁이 많고 속이 단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이런 시답잖은 우연을 필연이라고 믿는다. 단단하지 못한 마음에 '운명'이라는 말을 채우자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내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면 어제보다 한 발 더 땔 수 있는 사람이 되곤 했기에. 여전히 비관적인 인생을 한탄하면서도 운명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