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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Jul 18. 2023

딸내미야,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가 뭘 잘못 누르셨다는 카톡이 왔다.

딸내미야 , 엄마 뭘 잘못 눌러서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가 다 날아갔어 ㅠ.ㅠ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식지 않은 더위에 저녁 강아지 배변과 산책을  하고 와서 좀 쉬려고 할 때쯤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유튜브 계정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니 정말 모아놓았던 동영상 200개가 저장된 목록이 사라져 있었다.


"뭘 누르신 거야 엄마?"

"나도 모르겠어... 뭘 눌렀더니 다 지워졌어..ㅜㅜ."

엄마는 동부에서 라인댄스 강사로 일을 하고 계신다. 클래스에 쓰이는 음악이 200개 정도 들어있는 재생목록이라 엄마에겐 중요한 목록이었다.

"내가 볼 땐 모르고 삭제 누르신 거 같아, 다 지워졌어...."

쉬려는 타이밍에 좀 골치 아픈 과제를 해야 할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짜증이 섞인 퉁명스러운 말투로 엄마에게 답했다.

"그럼 그 담엔 뭘 해야 하나요? 딸내미....."

엄마는 잘못한 아이 마냥 내 눈치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엄마가 가르친 곡들을 그럼 다시 재생목록으로 만들고 싶은데....."


난 일단 엄마 계정으로 들어가 새 재생목록을 만들고 음악을 찾아서 목록에 넣는 방법을 건조한 말투로 설명해 드렸다.

"에효.... 동영상 밑에 점점점 세 개 있지? 그걸 누르셔, 그럼 재생 목록에 저장이라고 나와, 그럼 클래스란 목록을 누르시면 저장되."

"점점점? 어.... 그거 안보이는데..."

갑자기 또 짜증이 났다.

"화면 밑에 바로 있잖아! 내가 화면 캡처해서 카톡으로 보내드릴게, 빨리 봐보셔!"

화면을 캡처한 후 눌러야 되는 부분을 마구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서 엄마에게 보냈다."

괴팍하게 그린 빨간 동그라미


"아 이제 찾았다,,! 고마워, 네가 가까이 살았으면 이럴 때 더 좋았을 텐데...."

고마워 하는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내가 할바는 다했단 생각을 하며 소파에 널부러 졌다.



그날 새벽 자다가 문득 엄마 생각에 잠이 깼다.

엄마가 200개 되는 노래를 다 찾아서 저장해야 될 텐데 내가 반이라도 같이 저장해준다고 할걸...

아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돋보기를 쓴채  저녁 내내 혼자 그 곡들을 다시 찾고 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죄송한 맘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자기기 사용법을 엄마에게 설명하다가 헐크처럼 폭발하는 나를 본다.

얘길 들어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왜 이것도 못하냐고 부모님을 나무라기도 하고 성질을 내기도 한다고들 한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봤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어릴 때 모르는 것들을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반복해서 알려주셨을 텐데 우린 부모님이 한번 못 알아들으시면 핀잔을 주고 짜증을 낸다고..


그래.

머리로는 알면서 한 번씩 이렇게 인내심의 한계를 못 넘고 성질을 부리게 되는구나.

(그래도 변명하자면 너무 더운 오늘 날씨 때문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에게 카톡을 했다.

어제 저녁 못내 도와드리겠단 얘기를 안 한 게 죄송했다.

"엄마 음악 다운로드할 거 목록을 보내주셔요 , 내가 다운로드하여 드릴게!"

"응, 엄마가 다했어, 저장...."

"정말? 그걸 어제 저녁  다하셨어? 힘드셨겠네,,,"

" 아냐,  바로바로  저장돼서 하나도 안 힘들었어.."

"지금은 어디셔?"

"수업 끝나고 핏자 먹으러 왔어..." (항상 핏자라고 쓰는 울엄마)


힘들었다고 하면 걱정 할까봐 그렇게 얘기하는거 같아  맘이 짠하기도 하면서

수업이 끝난 후 안심하고 어머니들과 피자를 먹는 엄마를 생각하니 또 귀여웠다.


출처: 밥블레스유

예전 밥블레스유란 프로그램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최화정 씨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땐 왜 그렇게 짜증을 냈는지 모르겠어.."

그때 이영자 씨가 " 그래 언니 그때 싸가지 없었어..!"라고 하며 슬픔을 웃음으로 달래주었다.


같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결혼 후 서부로 온 이후 부모님을 일 년에 한두 번 보게 되다 보니 엄마 아빠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뵐 수 있을까란 생각에  서글퍼 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울엄마!

엄마가 우리곁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감사한데 아직도 라인댄스 강사로 행복하게 일하시는걸 보면 나도 너무행복하다!

다음에 또 엄마가 모르고 재생 목록을 삭제하시더라도 내가 다 다시 저장해 드릴게..

*근데 모르니까 재생목록에서 아무 버튼이나 누르시진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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