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행복으로 이끄는 넛지
매일 러닝 후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설령 한 시간을 딴짓으로 보낼지언정 일단 책상에 앉는다. 운동과 강아지 산책으로 피로해진 근육을 회복한다는 핑계로 한참 동안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를 스크롤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예쁜 인테리어 사진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사람보다 똑똑한 강아지들의 재롱에 키득거리며 나중에 남편에게 보여주기위해 저장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화면 속 소품에 충동구매 욕구를 느끼고, 유명인들의 진흙탕 싸움 같은 소식에 기분이 찝찝해지기도 한다. 내가 판 주식은 오르고 보유한 주식은 횡보하는 현실을 확인하며 쓴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스마트폰 잠금 해제와 동시에 내 마음속 판도라 상자에 갇혀 있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도 함께 풀려나온다.
밤낮으로 사용자의 시간을 붙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수많은 개발자들을 이겨내고, 즉각적인 도파민 대신 '느린 행복'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내심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즉각적 보상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의지보다 강력한 '부드러운 개입', 즉 넛지(Nudge)의 힘이 필요하다.
-침대 멀리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머리맡에 책을 두기
-아침에 바로 나갈 수 있게 운동복을 꺼내 두기
-쇼핑앱을 구석에 숨겨 로그인을 번거롭게 만들기
-거실에 티비 대신 책장을 두어 우리집 북카페 만들기
이는 모두 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슬쩍 밀어주는 장치들이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눈앞에 TV가 있으면 눕게 마련이지만, 눈앞에 책이 있으면 읽게 된다. 나 또한 집안 곳곳에 작은 카페 같은 코너를 만들어, TV 앞 소파보다 책상이 놓인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도록 나만의 동선을 설계했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 엄마가 머무는 방 책상에 아끼는 북스탠드와 책 한 권을 올려두었다. 엄마의 집 책상엔 커다란 모니터와 세월의 잡동사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엄마는 늘 책 대신 화면을 보시곤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책을 읽으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도 환하게 밝아졌다. 책읽고 글 쓰길 좋아하던 엄마에게서 모니터가 앗아갔던 '읽는 기쁨'을 되찾아드린 것 같아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언젠가 쓰겠지 하며 쌓아둔 물건들을 비우고, 아주 작은 코너라도 좋으니 공간에 딱맞는 편안한 책상을 놓아보자. 흩어져 있던 책들을 모으고, 공병에 연필 몇 자루와 작은 공책을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눈이 편안한 조명을 켜고 작은 식물 하나를 곁들이면, 그곳은 비로소 내면과 마주하는 성소(Sanctuary)가 된다.
거창한 서재가 아니어도 좋다. 세상의 소음을 피해 오롯이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아늑한 심리적 안전지대는, 굳이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의자에 앉는 순간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게 하는 마법 같은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