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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Aug 08. 2023

우리랑 다른 넌 어디서 왔어?

노래를 통해 느껴본 교포들의 삶

강아지랑 저녁 산책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Sarah kang의 노래모음을 듣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에 친구들이 내게 물었지,

너는 어디서 왔니? 우리랑은 많이 다르지

너는 영어도 못하지

너는 머리도 까맣지..'

이어폰으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가사들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평상시에 이 노래를 들어봤지만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경쾌한 리듬이라 가사도 사랑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가사를 찾아보았다.


나는 어릴 적에 친구들이 내게 물었지

너는 어디서 왔니?

우리랑은 많이 다르지

너는 영어도 못하지 너는 수학은 잘하겠지

너는 머리도 까맣지 너의 집은 어디니?


나의 집은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에

나의 집은 언니가 읽어준 동화책에

나의 집은 아빠가 사주신 인형 속에

나의 집은 동생이 아껴준 사탕 속에 있어.


나는 한여름에 어른이 되어서 갔었지

서울이란 곳엔 나 같은 얼굴이 많았지

그들도 내게 물었지

너는 어디서 왔니?

우리말은 할 줄 아니?

너의 집은 어디니?


나의 집은 그대와 꼭 잡은 두 손안에

나의 집은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에

나의 집은 둘만의 따뜻한 저녁 속에

나의 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에 있어

나의 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에 있어,,


가수 Sarah kang ,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가사를 보니 그녀의 시적인 가사 속에  교포로서 겪었을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너무 담담하게 녹아낸 거 같아 더 맘이 찡했다.


노래의 제목은 Home.

이 노래에서 홈이란 어떤 걸 의미할까?


어린 사라강이 정의했던 home은 미국아이들은 잘 알지 못하는 자신만이 보고 들었던 한국의 음식과 장난감 전래동화 같은 것 아니었을까?

난 여기 살고 있는데 자꾸 넌 어디서 왔냐고 넌 왜 다르냐고 묻는 물음 속에서

나를 둘러싼 물건들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린 나이에  스스로 조금씩 정의해 나갔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영화 riceboy sleeps

이 노래를 들으며 더 찡했던 이유는 남편이 생각나서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 번도 한국을 가보지 않은 한국계 미국인 남편은 언젠가 한국에 가면 이순신 장군과 계백 장군 유적지를 꼭 가고 싶어 한다. 본가가 뭔지

족보가 뭔지 잘 모르지만 조상님 들이 사셨던 곳이라 추정되는 곳을  인터넷으로 혼자 열심히 검색해 보기도 한다.


나는 남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며 물었다.

"당신도 어릴 때 이렇게 물어보는 애들 있었어?"

"있었지.."

"뭐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말랐냐고.. 너 가난한 애냐고.."

"그리고?"

"왜 몸집이 작냐고.."

"진짜? 또 뭐라 그랬어..?"

".. 더 말 안 할래..."

나는 속상한 맘에 더 물었지만

남편은 어릴 적 들었던 씁쓸한 말들을 더 이상 생각하기 싫었는지 조용히 폰으로 눈을 돌렸다.

".. 근데 이 가사 다 못 알아들은 거 같은데..?"

"그것도 있어….."

우린 서로 킥킥 웃었다.


성인이 되어 한국에 간 사라강은 한국에서도 또 같은 질문을 받는다.

‘너는 어디서 왔니 한국말은 할 줄 아니?’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이런 것 아닐까.

미국에선 한국인으로 살아오다 정작 한국에 왔더니  또 미국인으로 정의될 때  교포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참으로 클 것이다.

영화 미나리:출처 나무위키

근데  잘보명 성인이 된 사라강의 대답은 어릴 때와

많이 달라져있다.


어릴 땐 나의 집에 대한 답을 나를 둘러싼 한국의 문화와 물건들로 정의했다면

이젠 나의 집에 대한 정의를 국적에 국한 두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과 웃음,

따뜻한 저녁, 꼭 잡은 손이 평안한 나의 집이고 휴식처라고 말한다.

사실 집이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가.

더 이상 출생지나 외모를 따져 차별받는 일 따윈 그만두고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이곳이 나의 원래 집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youtube malama life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사는 마지막에 있다.


"나의 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에 있어."


이제 그녀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노래를 하는 아티스트인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맘으로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미국에서 열 시간 좀 넘게 가면 한국이고

24시간 세계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 간으로 알 수 있는 지금은 말 그대로 지구촌이 되어버렸다.

나라와 나라는 좀 거리가 먼 이웃 마을과 같다.

앞으로 이러한 세계화에 더 가속도가 붙게 된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더욱 넓어질 테고

좀 먼 마을에서 왔다고 서로를 경계하고 이상하게 보는 일들이 더 줄어들겠지.


어디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은  다 나의 집이라고 노래하는 사라강에게서  깨달음을 얻은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나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너의 정체성과 너의 집은 어디냐고 물었을 때
틀에 박힌 대답이 아닌 ,

진정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말할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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