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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Jan 13. 2024

집순이의 작은 쇼핑 일지

일상에 잔잔한 행복을 안겨주는 소비

바람이 많이 불어 코끝이  시린 1월의 어느 날,  러닝을 하다가는  모자가 날아가는 번거로운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 같아서 오늘은  오랜만에 강아지랑 홈굿에 걸어 갔다 오는 걸로 운동을 대신했다.


하천을 따라 걸어서 왕복 3~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강아지랑 가다 보면 자주 멈춰 서서 냄새를 맡길 좋아하니 나 또한 오랜만에 느긋하게 걸으며 가기로 했다.

집을 나서기 전 팬케이크 믹스와 블루베리를 잘 섞어 전기밥솥에 넣은 후 빵 만들기 모드를 누르고 나섰다.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리니 집에 오면 딱 맞게 맛있는 빵이 만들어져 있을 걸 생각하니 좀 신이 났다.

요즘 열심히 영수증들을 찍어서 영수증앱에 올려 받은 포인트를  홈굿 5달러 기프트카드로 교환했다.


홈굿은 인테리어소품들과 주방용품, 각종 음식재료들과 커피, 차종류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할인가격으로 판매하는 곳인데 물건들의 품질도 좋고 디자인도 예뻐서 한 번씩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제일 먼저 들리는 코너는 머그컵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3,4달러로 할인된 머그들이 많아서 기프트 카드로 머그 하나만 소소하게 사가자고 생각하며 왔는데  선반 깊숙한 곳에서 정말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숨어있는 너무 예쁜 커플 머그를 발견하곤 어머 이건 사야 돼!라고 혼자  내적 탄성을 질렀다.


홈굿에 오면 마치 보물찾기 하듯 숨겨져 있는  맘에 딱 드는 물건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my husband , my wife라고 써져 있으면 더 완벽했겠지만 재미난 문구도 , 큼지막한 머그의 크기도, 윤기 나는 어두운 회색도 너무 예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 머그 두 개가 8달러이면 합리적인 가격 아닌가!

두 번째 둘러본 물건은 프렌치 프레스였다.

카페인엔 취약한 나는  오후에 잘못 커피를 마시면 뜬눈으로 괴롭게 밤을 새우곤 하니  주로 보리차나 결명자 를 프레스에 넣어서 자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앞쪽의 가격이 좀 있는 제품들을 요리조리 옮기면서 이번에도 선반 깊숙한 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한 번에 8잔까지 만들 수 있고 디자인도 우리 집 부엌과 잘 맞았을 거 같은 느낌인 검정+스틸 조합의 예쁜 아이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가격은 8달러. 너로 결정했다!

세 번째는 여러 용도로  쓸 미니 냄비를 살펴보았다. 우리 집엔 냄비가 세 개 있는데 한 개는 라면 끓이기 적당하고, 두 개는 국 끓이기 좋은 사이즈이다.

라면사이즈 냄비를 쓰고 있을 때 큰 냄비에 계란을 끓이거나 적은 양의 음식을 하는 게 번거로워 제일 작은 사이즈 냄비를 사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온 김에 오늘 하나 데려가야겠다.

그래서 살펴보다가 가격은 13달러이고 색상도 우리 집 주방에 잘 어울리는 짙은 회색의, 유해성분이 없는 작고 귀여운 냄비를  카트에 하나 담았다.

물건들을 들고 강아지와 집에 도착하니 전기밥솥에서 빵이 다 만들어져 있었다.

사 온 물건들을 닦고 오늘 산 프레스 팟에 뜨거운 보리차를 우려내었다. 빵을 밥솥에서 꺼내서 슬라이스로 잘라주었다. 갓 만든 빵을 자를 때는 묘한 성취감이 있다.

밥솥빵은 술빵 비슷하게 빵과 떡의 약간 중간 단계 같은 맛이다. 빵이라기엔 좀 더 촉촉하고 떡이라기엔 더 폭신하다.

블루베리의 새콤하면서 달콤한 맛이 부드러운 빵 안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코스트코 팬케이크 믹스는 정말  훌륭한 제품이다!

5달러 기프트 카드도 쓴걸 제외하고 총 26달러를 소비했다.

자주 쓸 물건들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색과 디자인들이어서  더 뿌듯했다.


오늘산  커다란 머그로 겨울 내내  따뜻하고 달달한 음료들을 자주 마시고,  프렌치 프레스엔  우리가 좋아하는 보리차를  우려내 물을 더 자주 마시는 습관을 가지며, 작은 냄비에는 조금  출출할 때 라면 반 개만 딱 끓여 먹는 즐거운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소비에는 '사라지는 소비'와 '지속되는 소비'가 있다...

지속되는 소비는 이처럼 뭔가를 사고 난 후에도 일상에 잔잔한 행복으로 남는다. 감정의 결과가 소비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선 내게 지속적인 행복을 주는 소비를 할 줄 아는 것도 분명한 능력이다.

                            -하지 않는 삶 <히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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