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내 첫 방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떨어져 있던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던 2016년.
7년을 넘게 부모님을 못 뵈면서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어느 날, 할 만큼 해봤으니
이젠 그만하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살 인연이 다했던 건지
미련도 없었던 듯하다.
커다란 이민가방 달랑 하나에
그동안 살았던 결과물들을 추려 넣고
부모님의 품 같이
오래되었지만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오래된 뉴욕집이 항상 걱정이셨지만
난 난생처음인 미국살이에,
처음 살아보는 계단 있는 집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낡은 집과 오래되 다 까진 욕조와 세면대 까지도 그 자체로 클래식하고 예뻐 보였다.
처음엔 여행온 손님들과 방을 셰어 하는 기간이 있었지만 나중에 엄마는 내게 큰 창이 두 개 있는 방을 내어 주었다. 창밖엔 삼층크기의 커다란 나무가 무성한 나뭇잎들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방이었다.
방이 기운 거 같다고도 했지만 난 그저 내방이 하나 생겼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난 내방을 참 좋아했다.
아직 모든게 너무 낯설고
엄청나게 빠르게 돌아가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조용히 숨 돌릴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당시 난 데이케어 교사로 일하며 벌이가 크진 않아서 집에 있는 물건들로 어떻게든 꾸며보려 했었다.
집에서 잘 안쓰는 책상과 의자를 끌어다 오고
좀 더 방을 아늑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서 지하에 아빠가 모아둔 낡은 램프와 하얀 이불을 꺼내와 닦고 세탁하며 나만의 공간을 꾸몄다.
다행히 렌트비를 내지 않아도 됬고 집밥을 먹었으며 커피나 외식, 술도 즐겨하지 않던 난
그 돈은 차곡차곡 모아져 나중에 결혼자금이 될수 있었다.
내 방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민다는 건
내게 치유 같은 것이었을까.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지난날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치환하며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치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금이가고 움푹 파여 상처 난 내방 벽에
뒷마당에서 따온 아이비로 가랜드를 만들어 걸어주고
맨해튼을 걷다 발견한 헌책방에서 산 1달러짜리 그림책을 찢어 액자를 만들어 걸어주었다.
뒷마당에 널려있던
아이비덩굴이,
작은 그림책이,
지하에서 가지고 온 낡은 램프가
내 방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고 내 맘을 다시
설레게 해 주었다.
그때 난 혼자 여러 가지를 실험하듯
사부작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배트맨 마크가 고담시 밤 하늘에 쏘이던 것처럼
내방 천장에 배트맨 마크를 쏘아보기도 하고,
집에 있는 수건을 돌돌 말아
곰돌이를 만들어 보기도 하며
굳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소소하게 방을 꾸미는데서
오는 뿌듯함과 재미가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알았던 거 같다.
난 이런 작은 것들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안정감을 찾는구나.
그리고 노란 램프를 참 좋아했었구나^^
이 방은
내가 미국에서의 삶을 처음 시작했던 공간이고
성인이 되어 엄마 아빠와 처음으로 다시 살게 된
공간이었으며,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날 반겨주던 방이었다.
그리고 이 방에서 지내던 어느날 남편을 만났다.
낡고 오래된 이 방은
내가 다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품어주고 쉼이 되어주던 공간이다.
뉴욕에서 살던 내 작은 방을 떠올리면
고맙고 보고싶고 그립다.
마치 나의 부모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