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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은 숲에서 [보스케 | 제주 조천 감성 숙소]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어주는


글ㆍ사진 ㅣ 한아름


마치 일상과 여행을 오고 가듯 떠나고 다시 찾아오는 것이 계절이라고 하지만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 가는 봄은 매번 아쉽기만 하다.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형형색색의 봄이 머물던 자리 위로 여름의 기운이 밀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갖게 된 일상의 쉼표 사이에 나는 제주를 찾았다. 일 년여 만에 찾은 제주는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바다의 색도, 바람의 향기도 내가 알고 있던 제주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피하기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비가 내리는 제주의 풍경 속으로 다가섰다. 아마도 이 분위기가 내가 오늘 머물 공간과 제법 잘 어울려서 그런 걸까. 빗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여행도 썩 나쁘지만 않았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30여 분. 제주 조천 북촌리 작은 포구 앞에 도착했다. 바로 옆으로 서우봉이 펼쳐지고 저 멀리 비구름과 물안개로 희미하지만, 들쑥날쑥 오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직 빗소리와 파도 소리만이 메우는 고요한 마을 안. 나는 ‘보스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회색빛 단단한 벽으로 둘러진 곳. 안에 어떤 모습이 펼쳐지기에 이렇게 내부를 꽁꽁 숨겨둔 것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보스케’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장 먼저 시선이 닿은 보스케의 정원은 한바탕 굵은 비가 내리고 난 뒤라 촉촉이 젖은 무성한 수풀과 검고 붉은 돌들로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제주 중산간의 숲을 고스란히 옮겨와 미니어처로 구성해 놓은 듯했다. 정원을 가운데 두고 둘레길처럼 정원 주변을 걸으며 작은 숲이 전하는 여름의 향기를 느껴보았다.



마당 뒤편,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엔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월풀 기능을 켜두어 물이 인공적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이 소리 또한 보스케의 정원과 어우러지니 깊은 숲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같았다.



보스케는 안채와 바깥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바깥채는 반듯한 일자형 구조로 정원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보스케의 메인이 되는 안채부터 둘러보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방 공간에 가장 먼저 발길이 닿았다. 주방부터 거실까지 이어지는 직선 공간에 곧게 뻗은 아일랜드 장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에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시는 시간에도 매 순간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통창으로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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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해 보았다. 바닥의 소재와 단차를 두어 주방과 거실 공간을 분리해 두었고 거실은 조도가 낮아 편안한 무드로 쉴 수 있는 분위기로 조성되었다. 특히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원형 창이 낮에는 거대한 조명을 켜 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 원형 창 너머로는 노천탕이 있었다.



보스케의 노천탕은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물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외부의 부담스러운 시선은 차단한 채 일렁이는 꽃과 풀을 바라보며 여행 중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 줄 공간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조금 전에 보았던 주방처럼 반듯하게 테이블이 놓인 다실 공간이 나왔다. 보스케의 정원을 가까이에 두고 음악과 차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스케를 연상케 하는 사계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정원의 향을 담은 꽃차를 마신다면 온몸으로 보스케의 숲과 공간을 마음껏 향유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다실 공간은 보스케의 하이라이트이었다.



다실 뒤편으로 안채의 침실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당장 눕고 싶어지는 포근한 침구만 놓여 있어 여행 중 하루를 마무리하고 편안하게 숙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옆으로는 오픈형 욕실과 야외 수영장으로 연결되는 구조이었다.



건너편 바깥채는 또 다른 침실 공간이었다. 침실과 욕실까지 직선형 구조로 쭉 뻗어 있었고 바깥채 또한 욕실과 야외 수영장이 연결되는 구조이었다. 보스케는 어느 공간에서도 실내와 야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사계절 언제나 자연과 교감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스케를 찬찬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외식보단 보스케 안에서 먹기로 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 매직아워 속 보스케의 무드를 만끽하며 무탈했던 하루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내일 펼쳐질 새로운 여행을 상상하게 했다. 특히 완전한 밤이 되어 은은하게 켜진 경관조명 아래 빗물을 털어내는 잎의 일렁임이 마치 밤바다의 잔잔한 파도와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따스한 볕이 닿은 보스케의 정원은 하룻밤 사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푸른 잎에 남은 물기가 윤슬처럼 반짝였고 공기는 어느 때보다도 맑고 상쾌했다. 이렇게 봄에서 여름으로, 비에서 맑음으로 제주만의 변덕스럽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스케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틈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이 잠시 쉬어갔던 시간. 오직 나를 위해 곁을 내주었던 보스케의 작은 숲에서 큰 위로를 받고 떠났다. 



보스케에서의 빗소리와 흙 내음,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고단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누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작은 숲으로써 여행자의 곁에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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