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여유로운 작은 섬, 스테이 소도
TRAVEL ㅣMARCH 2019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변진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10여 분. 이런저런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우도. 대부분의 방문객은 반나절 정도의 관광을 예상하고 방문하고, 예쁜 바다를 구경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렇게 다시 배를 타고 나가게 된다.
제주도에서 우도, 우도에서 다시 소도. 우도 안의 작은 섬과 같은 프라이빗 한 스테이. 스테이소도. 반나절의 일정만으로는 만날 수 없는 우도의 밤, 우도의 쌀쌀한 새벽 공기까지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스테이소도는 A동, B동 두 건물과 넓은 마당을 갖고 있다. 약간 솟은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두 개의 작은 건물. 마치 섬 안의 또 다른 섬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A동, B동 각각 침구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혼자나 둘보다는 친분 있는 두 커플, 두 가족이 함께 여행 와서 지내기 좋을 것 같다. 마당도 넓으니 애들이 몇 있어도 너무 북적거리지 않을 테고.
대지에 비해 건물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한적하고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사라진 밤늦게 깜깜한 우도 이곳저곳을 다니다, 약간 높은 곳에서 불을 환히 밝히고 기다리는 스테이소도의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기도 했다.
스테이소도는 부속 시설로 수영장도 있다. 동계에는 이용할 수 없다. 데크에는 넉넉하고 편안해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입실 전 미리 요청하면 바비큐 도구도 준비해주신다고 한다. 날이 추워서 바비큐도 나중을 기약하기로 한다.
크고 시원시원한 창. 창을 닫고 따뜻한 실내 공기의 도움을 받아 하루 종일 멍하니 바다를 바라볼 수도 있고, 여름에는 창을 활짝 열고 물놀이도 즐기다, 고기도 구워 먹다 하기 좋아 보인다.
나 역시도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이 창을 통해서 한참을 우도 바다를 바라보았다.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어떤 목적성도 없이 그냥 바다만 바라보았는데 그게 좋았다. 굳게 닫힌 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 바깥의 바다는 심한 바람 덕분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아주 사치스럽게, 아주 편안하게 멍하니 바다를 감상했다. 꽤 오랫동안.
평소의 우도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바람이 꽤나 심하게 불었다. 한밤중에는 문을 여닫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고, 바람소리 덕분에 잠도 설쳤다. 무겁고 단단한 돌을 괴어두셨는지 바깥의 바비큐 테이블은 큰 문제가 없었다. 저 커다란 돌을 보면, 우도의 바람은 평소에도 매섭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B동부터 구경해보기로 한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A동보다 작고 아늑한 느낌이다.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이다 보니, A동, B동 모두 각자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B동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모습. 작은 창 바깥으로 낮은 제주 돌담이 보인다. 어매니티는 A동, B동 모두 이솝. A동에 비해 작은 공간이지만, 창이 많고 채광이나 조명이 어둡지 않아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B동의 욕실. 작은 공간임에도 욕조까지 갖추었다. 덕분에 혼자 음악도 듣고, 목욕도 하고, 신선과도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욕조용 테이블도 있으니, 몸을 담그고 책이나 스마트폰 등을 보기에도 좋다.
B동의 침실. 침실은 A동보다 B동이 마음에 들었다. 발아래 넓은 창도 매력적이고, 따뜻하고 노란 조명이 기분 좋게 감싸줘서 좋았다. 이른 아침 발밑으로 들어오는 햇살 또한 좋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 조금 이른 시간부터 개인 시간을 갖게 되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끌벅적하게 밤늦게까지 술과, 수다로 밤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가능하다면 스테이소도에 준비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책과, 좋은 스피커와, 해가 지기 전 우도의 풍경과 함께 차분한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겠다.
작지만 부족함이 없다. 난방은 따뜻하고, 여름에도 문제없을 에어컨도 보이고, 작은 탁자에서는 책을 보거나 노트북 등을 올려두어도 무리 없다. 둘 또는 혼자 지내기 적당한 공간.
A동도 그렇지만, 스테이소도는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재미가 있는 공간이다. 근처 독립서점에서 준비한 듯한 개성 있는 책들, 뱅앤 올룹슨 블루투스 스피커와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협탁. 이곳저곳 세심하게, 짧은 시간이지만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잠깐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잠깐 숨이나 돌리려고 했는데, 푹신한 침대 덕분인지, 정적인 창밖의 풍경 덕분인지 조금 더 오래 누워있었다. 움직여야지, 해는 금방 떨어지고, 섬에서의 밤은 너무 길다. 할 일이 아직 많다.
A동으로 넘어가 보자. 신경 쓰이던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 문을 열고, 닫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섬에서 느끼는 바다 바람이 꽤나 매섭다. 밤에 어디 다니지 말고, 가만히 술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A동의 첫 모습은 넓고, 환하고, 편안하다. 큰 테이블, 큰 창, 큰 창을 바라보기 좋은 큰 소파, 넓은 부엌도 보인다. 환한 조명 덕분에 넓은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
스테이소도는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닷가 풍경 말고는 시선을 뺏는 오브젝트가 없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고개를 조금 돌리면 우도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여기저기 창이 많고, 시야가 나쁘지 않아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목욕을 하다가도 사방에서 우도를 만날 수 있었다.
점점 더 큰 식탁, 큰 테이블이 좋아진다. 크면 클수록 아무리 어질러도 불편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어질러 놓고 도망 나오진 않았고, 아침에 깨끗하게 정리는 다 했다. 어쨌든 치우기는 해야 하는구나.
스테이소도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풍경이다. 큰 수영장 너머로 우도의 바다가 보인다. 포클레인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면, 저 둑은 원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시야가 훨씬 더 좋았겠지.
스테이소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면,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고민을 많이 하고,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했겠다는 점이 느껴진다. 공간이 넓은 만큼 이것저것 채우고 싶고, 더 유니크하고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넓은 공간을, 편안한 공간을 오롯이 즐기기 좋았다.
A동은 화장실이 두 개다. 하나는 테이블 근처에 있는 작은 화장실, 다른 하나는 침실에 붙어있는 큰 화장실이다. 작은 화장실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쾌적한 공간.
해가 지기 시작하고, 바깥은 점점 어두워지고, 스테이소도는 점점 더 밝아진다. 정면에도, 양옆에도 창이 있어서 개방감이 좋다. 한밤중에는 바깥이 워낙 어둡고,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리다 보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어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모두 내렸다. 덕분에 더욱 '소도' 같은 느낌이었다.
부엌도 넓다. 굳이 테이블까지 가지 않아도, 여기에 기대어 서서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술도 먹고, 함께 음식도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그러기엔 우리 모두 먹는 일만 잘하는지라, 넓은 부엌은 처음 그 모습처럼 깨끗하게 유지되었다.
죽은 빵도 되살려낸다는 발뮤다 토스터, 커피 내리기에 편한 발뮤다 전기 포트. 빵이라도 조금 사 올걸 그랬나. 찻잎과 차를 내리는 도구, 치즈 나이프 등도 준비되어 있다. 대부분의 다른 스테이도 내부 집기가 부족해서 불편하다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스테이소도는 더욱 그렇다.
넓고 깨끗하고 부족함이 없는 부엌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여닫는 정도가 전부. 요리를 좋아한다면, 일행이 많다면 미리 계획을 성실히 짜고 욕심을 조금 더 부려보는 것도 좋겠다. 그냥 놀리기 참 아쉬운 공간이었다.
스테이소도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부분 중 하나. 안내서 하나에 모든 이큅먼트에 대한 설명을 넣을 수도 있지만, 토스터, 블루투스 스피커, LP 플레이어마다 간단한 작동 설명서가 놓여 있었다.
A동 거실에도 뱅앤올룹슨 블루투스 스피커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MP3가 물려있고, 본인의 스마트폰을 연결하거나, 옆에 마련된 LP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재즈 바이닐이 몇 개 구비되어 있었는데, 이것저것 하면서 bgm으로 깔아두기 참 좋았다.
허전한 서랍장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있어보기에 위해 의미도 없는 잡지책을 쌓아두기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이소도에서는 '읽는 재미'가 있다. 재미있는 사진집도 있었고, 삽화가 있어 편하게 읽기 좋은 시집도 있었다. 일행과의 수다도 물론 즐겁지만, 낯선 얼굴을 가진 책과 함께하는 시간 역시 가치 있다.
안내서와 방명록. 방명록은 '내가 글을 남기는 것' 보다 '남이 적어둔 글'을 보는 것에 조금 더 무게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보고 넘어가기에는 미안하니, 몇 줄 적어본다. 옆에는 커피 원두와 핸드드립 도구가 있었다. 원두는 로스팅 한 지 조금 된 듯했지만, 마시기 나쁘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 오랜만에 핸드밀을 돌리니 운동하는 기분도 들고 좋았다. 잠깐이나마 집에 있는 전동 그라인더가 참으로 고마웠다.
A동의 침실. 넓은 공간, 넉넉한 사이즈의 침대. 바닥에서도 몇 명 자도 크게 불편하지 않겠다. A동, B동 모두 거위털 침구류가 준비되어 있어서 실내 온도를 크게 높이지 않아도 포근하게 잠들 수 있었다.
A동 침실 바깥 풍경. 다분히 제주스러운 돌담에 갇힌 욕조가 보인다. B동은 실내에, A동은 실외에. 분위기는 A동이 더 좋겠지만, 동계에는 B동의 압승이겠다.
우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양치질을 할 수 있다. 다른 스테이소도의 모습도 그렇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휴식, 휴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A동 바깥에 자리한 욕조. 적당히 개방감이 있고, 적당히 아늑하다. 워낙 우도의 밤이 조용하긴 하지만, 밤늦게 욕조를 사용한다면 모두를 위해 조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A동과 B동의 침실은 느낌이 아주 달라서, 취향의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겠다. 따뜻하고 아늑한, 분리된 느낌의 B동도 좋고, 넓고 쾌적한 A동의 침실 역시 좋다. 몸은 하나고, 밤은 한 번이다 보니 두 침실을 모두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여행객이 모두 떠난 우도의 밤은 정적이다. 한낮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어둡고 조용하고, 쓸쓸하다. 문을 연 가게도 많이 없고, 편의점도 밤늦게는 모두 닫는다.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조금 분산스럽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 우리도 얼른 짐을 풀고 미리 알아봐둔 가게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우도에 입도하기 전 사둔 술, 우도 편의점에서 사온 술, 간단한 주전부리와 함께 스테이소도에의 밤을, 제주도 여행의 첫 번째 밤을 보낸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보니 셋이 모인 것도 꽤 오랜만이라 한참을 달리는 차 안에서 떠들었음에도 할 얘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체력은 그러하지 못했으며, 다음 날을 기약하며 일찍 자리를 정리했다.
시끄럽다 느낄 정도로 바람에 세게 불어 잠을 많이 설쳤다. 결국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서성이다, 커피를 한잔했다. 스테이소도 한 켠에 비치된 관광 안내서의 내용이 생각이 나 비양도에 일몰을 보러 갔다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오니 완연한 아침이다. 바깥의 해안 도로에는 하나 둘, 여행객의 2인승 전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퇴실하기 전까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커피는 새벽에 마셔 그리 생각나지 않았고, 술을 마실까 했는데, 어제 다 마셔 냉장고가 비었다. 하는 수없이 멍하니, 아무것도 물지 않고 바다를 바라본다. 마당의 이름 모를 풀들이 세차게 흔들리고, 굳게 닫힌 창이 걸러준 희미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다는 푸르다 못해 하얗게 부서진다. 크게 어떤 생각을 하거나, 상념에 젖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따뜻한 실내공기와 다른 바다의 이질적인 모습 때문이었는지 무언가 비현실적인 풍경처럼 느껴졌고, 지루하지 않았다.
우도에서 1박을 했으나, 다른 반나절 여행객에 비해 '엄청나게 다른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도에서의 하룻밤을 보냈으며, 그 밤을 스테이소도에서 지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 있어 우도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우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탔으나, 소도를 즐겼고, 소도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으며, 스테이소도 덕분에 우도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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