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쪽으로의 자발적 유배 : 고산별곡
고요한 자연 아래, 100년의 세월이 빚어낸 작품
고산별곡
제주도의 가장 서부에 위치한 고산리(高山里)는 바다와 맞닿는 수평선으로 일몰 외에도 당산봉(唐山峰) 및 차귀도(遮歸島), 황새 도래지 등의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시간이 멈춘 듯 소박한 풍경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고산별곡은 조선 후기 장복겸의 시조 <고산별곡>을 모티브로 해 오래되어도 가치 있는 것,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낡은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장소로 완성되었다. 일상을 담는 삶의 그릇이었던 옛집은 개조보다 복원에 중점을 두어 집의 원형을 해치지 않았고, 아름답게 나이를 먹은 현무암과 지역성을 간직한 질박한 감성이 더 오랜 생명력을 더하도록 재해석되었다.
100년의 세월을 담은 고산별곡의 마당은 장소성을 품은 옛 돌집과 새로 만든 수영장이 있는 온실, 오래된 종탑과 새로 심은 정원수의 조화로 서사적 풍경을 고스란히 전한다. 고전의 풍취가 깃든 안거리는 온전한 휴식을 위한다. 침실 내 마련된 욕조에 몸을 뉜 채 휴식을 누리는 순간 어지러운 세상사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나'만 남는다.
낮은 정원에는 소박한 티 룸이 위치하고, 정원 너머 밖거리에는 제주를 닮은 자그마한 부엌이 있다. 온수 풀이 있는 보타닉 인도어 가든은 제주의 자연을 담아낸다. 고산별곡은 사용자의 감각과 의지에 따라 놀이와 명상, 쉼의 공간 등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옛 가옥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여행자로 하여금 풍요로운 자아를 만나게 하고 영감을 발현시키도록 돕는다.
백 년 전 한 개인의 삶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건축은 이곳을 찾아온 여행객의 삶과 어우러져 또 다른 기억의 배경이 된다. 오브제와 여백 등 공간이기에 앞서 옛것과 새것이라는 시간이기도 한 요소 사이의 긴장은 고산별곡을 완성하고 즐기는 감상 포인트다. 제주의 끝자락에서 번거로운 세상일을 멀리하고 불완전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고산별곡>처럼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일무이한 자아와 만나는, 자발적 유배의 진면목을 발견하길 바란다.
Edited by STAYFOLIO
Designed by 어반플롯 서호성, 임선영
Photo by 이병근
고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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