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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비밀 낙원 : 고유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오롯이 내가 원하는

시간들로 채우기


글ㆍ사진   한아름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어릴 땐 갸우뚱했던 이 말에 한 해 한 해가 더 해질수록 공감하고 체감하는 중이다. 특히 요즘엔 이런저런 제약들로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더욱 아쉽다.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쓸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오롯이 내가 원하는 시간들로 가득 채우는 하루를 보내려 했다.



옛 것을 고스란히 남겨 다른 도시보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곳. 우리나라의 ‘슬로시티’인 전주 한옥마을을 찾았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600여 채의 한옥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엔 활기 넘치는 전통문화가 스며있었다.



북적이는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니 금세 고요함이 찾아왔다. 한옥마을 속길엔 상점보다는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 온 주민들의 공간들이었다. 하나의 마을 하나의 골목길이지만 집집마다 삶의 자취는 각기 다른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골목 위에 함께 자리한 한옥 한 채. 바로 오늘 내가 머물 ‘고유’이었다.



60여 년이 넘도록 이 골목을 지켜온 곳. ‘속세에 벗어나 한가롭게 노닌다’는 뜻을 담아 만들어진 숙소이다. 이름의 뜻처럼 첫 발걸음이 닿았던 고유의 마당에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물소리와 너럭바위 그리고 곧게 뻗은 소나무가 있었다. 도심에서 몇 걸음 들어오지 않았지만 마치 조용한 산속 나만의 비밀 낙원에 온 것 같았다.



묵직한 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따뜻한 베이지 톤 바닥에 새하얀 벽, 오랜 세월을 지닌 나무 기둥과 서까래가 눈에 들어왔다. 기존 한옥의 틀을 최대한 살리되 단열과 보온에 신경을 쓰는 등 한옥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특히 마당을 향해 내어 있는 통창과 좌식 테이블, 그리고 실내 욕조는 바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특히 마음 놓고 나갈 수 없는 시기인 만큼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집 안에서 자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고유에는 침실과 욕실이 각각 두 개씩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볕이 잘 드는 원형의 창이 있어 겨울 햇볕도 따뜻하게 담아냈다. 두 번째 방에는 창이 없었지만 욕실과 실내 욕조까지 이어져 있는데 분리가 되면서도 원한다면 언제든 거실까지 하나의 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짧은 겨울의 오후 끝자락, 실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많은 걸음수를 채웠으니 가장 고생했을 다리에게 따뜻함으로 휴식을 제공했다. 마침 시기적절하게 눈발이 살짝 흩날렸다. 문을 닫기 보다 오히려 욕조 앞에 있는 문을 활짝 열어 찬바람을 맞이했다. 뜨거워진 몸 위로 바람이 불어오니 춥기는커녕 오히려 적정한 온도가 되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마치 고요한 산속에서 온천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반신욕 후 몸이 노곤해지니 허기가 느껴졌다. 오늘 저녁식사는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편하게 숙소 안에서 주문을 하는 것을 택했다. 너무 고요해 깊은 산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이곳은 전주 도심 한가운데. 주문 후 30여 분 지나니 맛있는 저녁식사가 도착했다. 



간단하지만 집밥처럼 든든하게 한상 차려 먹고, 따뜻한 차로 고유에서의 여유를 더 즐겼다. 이토록 오롯이 시간을 누리고 음미하며 속세에서 벗어난 한가로운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늑함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어느 때보다도 질 좋은 숙면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 밖으로 나가 마당을 거닐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볕이 따뜻해서 괜찮았다. 어제 오후와는 다르게 햇빛이 소나무 뒤로 넘어가니 고유를 향해 비친 그림자가 한폭의 수묵화 같았다.



고유에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식이 제공되었다. 최신 트렌드인 ‘비대면’ 배달 형태의 조식이었다. 배달이라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내용물은 간단하게 크루아상과 샐러드였지만 맛과 신선도는 최고였다.



사계절 언제든 좋겠지만 고유 마당에 새순이 싹틀 때 바깥에서 온전히 한옥을 즐기면 더 좋을 것 같다. 한옥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자연으로 이동되는 곳. 도시지만 어느 곳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곳. 누구든 고유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잠시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천천히 나만의 시간을 채우길 바란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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