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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발견 : 토브카키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사소한 기쁨의 순간


ㅣ 신은지   

사진  김문영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만이 여행인가. 일상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지고 떠나는 것만 여행이라면 제법 구슬플 사람들 여럿이겠다. 현대인에게 과연 진정한 자유가 있을는지.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일상의 조각을 한 손에 쥐고 있더라도 여행은 시작된다. 퍼석한 얼굴을 한 나의 일상을 여행지로 끌고 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며 윤기 나고 생기 있게 닦아주는 것이다.


토브카키와의 만남은 그러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쌓여 있었고, 그럼에도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내가 일을 해야 할 곳은 집도 회사도 아니었다.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다. 그렇게 마음이 휘청이는 와중 마주한 토브카키. 단숨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토브카키는 강릉 교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스테이였는데, 나른하게 햇볕을 즐길 수 있는 큼직한 테라스와 집을 가득 채운 감각적인 빈티지 가구가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무척 편안해 보이면서도 기분 좋은 낯섦이 느껴지는 곳. 지친 일상에 힘을 불어넣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오르자 운치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넓은 테라스가 2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1층은 호스트 공간, 2층은 게스트 공간이다. 유연한 개조를 거친 구옥은 2개의 출입구를 지녔기에 완벽히 분리된 동선으로 편안하게 들어설 수 있었다. 대문부터 비범한 모양새였다. 밝게 빛나는 매끄러운 철문이 큼직하게 달려 있었는데, 중앙에 작은 원형 창을 내 큰 선박이나 잠수함의 문을 떠오르게 했다. 건물을 다시 돌아보니 수평으로 길게 뻗은 처마나, 옆면을 짙게 칠한 라인 같은 점들이 일종의 마린 스타일처럼 느껴진다. 강릉 교동에 두둥실 떠 있는 새하얀 배.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토브카키에 승선했다.



감각적인 수형의 식물이 이어져 계단을 오르는 짧은 길목도 허투루 지나치기 아쉬웠다. 작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서자 붉은 갈색 타일이 인상적인 테라스가 등장했다. 정방형 타일이 빼곡히 이어지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나무가 자리를 지키는데, 이미 그 자체로 어딘가의 감각적인 카페를 연상시켰다. 감성적인 베이지색 파라솔과 빈티지 의자로 작게 쉴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이토록 아늑한데도 하늘은 또 무척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서 맥주를 사 와야지. 일은 나중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 마시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소담하게 핀 꽃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현관 아래를 비우고 꽃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둔 것이다. 호스트의 배려가 담긴 꽃을 보니 일말의 피로감조차 완전히 풀렸다.



햇볕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넓은 창가,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편안하면서도 독특한 생김새의 가구들. 스테이가 품은 취향에 먼저 시선이 갔지만 이내 잔잔한 음악이 귓가를 간질였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큼직한 JBL 스피커가 한눈에 들어온다. 따스한 햇볕을 품은 공간과 결이 잘 맞는 느긋한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공간 자체가 내게 환대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듯한 기분.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습관과 취향, 성격까지, 집은 한 사람의 삶을 여실히 드러내어 준다. 그런 점에서 토브카키는 잘 갖춰진 스테이였음에도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과 취향이 한껏 묻어나는 집처럼 다가왔다. 큰 창 앞에는 멋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이, 그 뒤에는 정겨운 인상의 목재 가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 넉넉한 갓을 지닌 미드센추리 조명과 앤티크한 유리블록이 어우러지니 머무르는 시선마다 즐거움을 느낀다.


놀랍게도 가구부터 조명까지 모두 컬렉터의 손길을 거친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이다.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지나간 시간을 짐작하게 하면서도, 외관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리되어 빈티지 제품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다. 거실에 있는 오묘한 생김새의 원형 테이블과 정갈한 USM 가구는 물론이고 침실을 빼꼼히 들여다보면 마주하는 거울과 수납장도 세월의 흔적을 우아하게 받아들인 빈티지 제품. 완전한 영감의 공간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나도 모르고 지냈던 내 취향을 자꾸만 깨우치게 됐다.



주위를 둘러보고 자리를 정돈했다. 둥근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는데 벌써 만족스럽다. 지나칠 정도로 일상적인 타이핑 소리나 조금쯤 뻐근해진 눈가의 근육 같은 것들마저 지금은 기분 좋은 새로움이다.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 잔잔히 흐르는 음악 가운데, 나는 블라인드 너머 쏟아지는 햇빛의 기울기만으로 시간을 가늠한다. 빛과 그림자가 점차 기울어지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곗바늘이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음미하며 머무름을 즐겼다.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바로 틈의 존재.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 짧게 틈을 내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토브카키도 나를 리프레시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틈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얼기설기 엮은 형태의, 흥미를 자극하는 인더스트리얼한 책장이나 햇빛을 서늘하게 여과하는 블라인드, 공간 곳곳을 따스하게 밝히는 유리블록 같은 것들. 시선이 자유롭다. 심지어는 욕실도 인상적이었다. 벽 아래에 유리블록이 있어 발 아래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보송보송한 욕실이 또 있을까.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동네의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보고자 토브카키를 나섰다. 여름에 초입에 들어서 담장마다 장미가 소담히 피어 있었고, 하늘 끝자락부터 물들어가는 노을은 조용한 교동 골목길의 운치를 북돋았다. 걸어 다니기 좋은 길이 이어졌다. 몇분 걷지 않았는데 아기자기한 카페가 한두 군데 나타나더니 서부시장이 등장했고, 보아하니 조금 더 걸으면 월화거리까지 연결되는 모양이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토록 갈망하던 맥주를 품에 안은 채 짧은 산책을 마쳤다.



어둠이 내려앉은 토브카키는 낮과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저녁의 토브카키는 한층 세심하고 다정했다. 몸에 차오른 열기를 씻어내려 들어간 욕실에서 소창 수건을 발견했다. 여러 공간을 다녔다 생각했지만 스테이에서 이렇게 전통적인 소창 수건을 사용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보드랍다. 왠지 마른 햇볕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비치된 워시 제품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었다. 은은한 히노키 베이스의 향이 피부를 섬세하게 정돈해준다.



낮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조명은, 저녁이 되자 빛을 더 아름답게 퍼뜨렸다. 천장에 달린 등도, 테이블 조명도 하나하나 누군가의 작품 같은 형상이었다. 공간 어디에도 똑같은 생김새의 조명이 없었다. 아마도 호스트는 이곳을 몇 번이고 둘러보며 각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명을 세심히 고르고 골랐겠지. 스위치도 남다르다. 누르는 버튼이 아니라 돌리는 형태인데, 조작감이 고급스러워 한참을 살펴봤다. 탐이 나는 디테일이다. 침실에는 빈티지한 테이블 조명이 있었다. 달칵이는 스위치를 눌러 소등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으나 눈이 절로 떠졌다. 누군가가 나를 부드럽게 깨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창문 너머 들어오는 빛이었다. 침실 구석에 긴 유리블록이 나 있었다. 여기에도 기분 좋은 틈이 있구나.



맑은 하늘이 보이는 창가를 보니 기필코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사실 어제 주방을 눈여겨봤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찬장에, 하나씩 써보고 싶은 테이블웨어가 가득했던 탓이다. 찬장은 그릇을 세워 거치할 수 있는 프레임이 내장돼 편리하면서도 식기를 스타일리시하게 디스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찬장에는 비정형적인 형태의 컵, 대리석 같은 무늬를 새긴 그릇 등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테이블웨어가 큐레이션돼, 트렌디함과 편의성을 고루 갖춰 탐나는 주방을 완성했다.



음식 조리는 어렵지만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다양한 식기가 준비되어 간단하지만 제법 훌륭한 차림새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는 호스트의 섬세한 취향이 드러나는 대목. 공간에 딱 알맞은 웜 화이트의 아담한 디자인을 위해 일본에서 직접 데려왔다고.



산책하다 들고 온 교동빵집의 데니쉬 식빵과 비치되어 있던 로컬 커피와 홍차를 내려 아침 식사를 차렸다. 드립 커피의 향은 생각보다 더 훌륭해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고, 식빵의 결은 부드럽고 쫀쫀해 선물용으로 딱이다.



체크아웃은 11시. 하늘이 드넓게 펼쳐진 테라스에서 푸르른 생기가 느껴지는 식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토브카키에서의 마지막을 누렸다.


토브카키와 동네 주변에서 소소하게 머무른 여행이었지만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항상 무거웠던 노트북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 설명이 될까. 취향의 세계, 영감의 공간. 토브카키의 모든 곳이 특별했고, 친절했으며, 편안했다. 독보적인 스타일과 트렌디함을 갖췄음에도 나를 배척하기는커녕 내 취향의 세계를 상냥하게 넓혀주는 공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상에 기분 좋은 틈을 내어 주었던 토브카키를 꽤 오랜 시간 그리워할 것 같다.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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