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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그리는 : 재야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초야에 묻혀

풍경 속에 머물다


글ㆍ사진   한아름


이번에는 일상과 가까운 곳.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하늘을 향해 경쟁하듯 높은 빌딩이 즐비하지만, 빌딩 숲 사이 오랜 역사와 예술적 풍취를 간직한 서촌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정을 시작했다.


서촌은 반듯하고 넓은 서울의 다른 번화가와 달리 미로같이 좁고 꼬불꼬불한 옛 골목 위에 한옥과 양옥이 오랜 시간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서촌 골목 위로 개성 있는 공간들이 채워졌고 그 속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지금도 다양한 이야기가 역사처럼 쌓여 간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삶이 되는 골목길. 오늘 나도 서촌 골목에 숨어 있는 스테이 ‘재야’에 머물며 추억과 삶의 일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재야로 향하기 전, 조금 특별한 방식의 체크인을 진행했다. 재야는 높은 빌딩에 있는 수직적인 호텔과는 다른 형태로, 서촌 곳곳에 위치한 스테이를 연결하는 수평적인 호텔 ‘서촌유희’ 소속이다. 서촌유희의 컨시어지인 ‘한권의 서점’에서 체크인을 진행했다.


한권의 서점은 한 단어를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자 서촌유희의 컨시어지 공간이다. 스테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서촌에서 머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지도와 상점의 할인 쿠폰, 웰컴 티 등을 담은 체크인 키트를 제공받았다.



재야 예약 당시 미리 추가했던 조식은 한권의 서점 옆에 위치한 ‘에디션 덴마크 쇼룸’에서 직접 픽업을 해야 했다. 사전에 안내받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시간을 약속하고 방문하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오고 가는 호텔이 당연히 편하겠지만 서촌이라는 큰 마을이 하나의 호텔이 되고 서촌에 위치한 모든 식당과 카페가 호텔 속에 있는 식당이 된다는 것이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조금 다른 방식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면 이것 또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서촌유희 컨시어지를 지나 한적한 주택가로 5분여 접어드니 언덕 위 붉은 벽돌집 앞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머물 스테이 재야였다. 벽돌이 켜켜이 쌓인 성벽 같았던 외벽.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치형 터널 너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몇 걸음 안 되어 끝에서 끝이 닿는 작은 마당이었지만 곳곳에 핀 크고 작은 식물은 성큼 다가온 여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방금 전까지 북적거리는 서울 도심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너무나도 고요했다. 서울 도심 한쪽에 숨어서 바깥세상을 몰래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스테이 재야는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두 개의 공간이 나뉘어 있었다. 우측에는 원룸 형태인 스테이 공간, 좌측에는 다이닝을 위한 공간이 자리했다. 공간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은 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휴식 시간에는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집중하게 했다.



먼저 스테이 공간에는 두 명이 포근하게 머물 수 있는 침대와 그 옆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다른 숙소에 비해 커다란 붙박이장과 넉넉한 수납공간이 특징이었다. 아마도 장기간 머물 게스트를 위해 설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세월을 품은 천장과 그 아래 자리 잡은 따스한 톤의 가구는 모두 창밖에 펼쳐진 풍경과도 잘 어우러졌다. 



창 앞으로는 책상과 기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앞으로 한권의 서점에서 큐레이션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한동안 책과 풍경에 빠져 천천히 스미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큰 창 너머 인왕산이 품은 서촌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옥인동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풍경 너머로 겸재 정선의 해석과 감동을 더한 진경이 겹치는 모습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서촌은 다른 지역보다 특별한 곳임이 분명하다.



중정을 지나 건너편 다이닝 공간으로 가보았다. 각종 주방 도구와 식기류, 커다란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여느 가정집만큼 장기간 머물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모두 배치되어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스테이 공간에서는 인왕산의 절경을 만끽했다면 다이닝 공간은 재야의 작은 정원을 가까이에 두고 지금 머물러 있는 계절과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맛집이 즐비하니 저녁 식사는 걱정할 것도 없었다. 편안한 공간 속에서 편안한 저녁 식사까지 즐기고 나니 어느덧 서촌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어둠이 더 깊게 내려앉기 전에 옥상에 올라 인왕산과 서촌을 바라보았다. 재야의 의미 그대로, 초야에 묻혀 풍경 속에 오래도록 머무는 이 순간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재야에서의 아침은 서울 도심 속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소음과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림처럼 운무에 덮인 인왕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명징한 날씨에 두 눈이 시원해졌다. 인왕산에서 놀러 온 새들의 아침 인사 소리와 함께 전날 에디션 덴마크 쇼룸에서 받아 온 조식을 차려 먹었다. 널찍한 창밖으로 내리쬐는 아침 햇살과 풍미 깊은 커피 한 잔. 오랜만에 마주하는 조용하고 한적한 아침이 특별했다. 



보편적인 일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가서니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신선한 여정이 되었다. 이제 다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시간.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서촌만이 뿜어내는 향취를 풍성하게 느끼며 도심 속 내가 있었던 일상 속으로 스며갔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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