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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러 떠나는 여행의 목적 : 그 여자네 집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느린 도시의 한옥 스테이


글ㆍ사진  이형기


로컬 크리에이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세 번째 도시는 전주였다. 미식의 도시답게 엄청난 인풋(?)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실 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비우러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여행을 가게 되면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먹고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했었다. 내가 좋아해서 했던 것들도 있었지만 "나 여기에서 이것도 먹어봤어", "나 여기에서 이것도 해봤어"처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시간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자랑할 일도 딱히 없어진 나이가 되니 나만의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은 다르겠지만, 최근 나의 여행은 비움이 목적이다. 바쁜 일상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던 생각을 내려놓는 것.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편하게 몸과 마음에 휴식을 취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숙소를 고를 때도 나의 몸과 마음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하루 이상은 넣어두려고 한다.


전주 여행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이전의 여행은 잠만 자는 숙소를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나의 여행 목적에 맞는 한옥 스테이 숙소를 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전주에는 이런 숙소들이 많지 않았다. 이전에 다녀왔던 강릉과 속초보다 한옥 스테이의 수 자체가 적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는 날짜에 좋은 공간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시간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이번 전주 여행에서 묵은 한옥 스테이의 이름은 '그 여자네 집'.

전주 한옥마을의 끝 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명의 김용택 시인의 시집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이 시집에는 사랑에 관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자연에 대한 사랑까지 말이다.



다른 한옥 스테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입구에는 현대적인 건축의 갤러리가 있고, 안쪽에는 한옥 스테이가 있는 형태였다. 또 인상 깊었던 점은 현관문이 따로 있지 않았다는 점. 난간의 자물쇠를 돌려서 여는 담 낮은 집의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옛날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장치였는데, 나도 이런 집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으며 이 낯섦이 그 여자네 집에서의 시간을 기대하게 했다.



그 여자네 집은 마당을 보유하고 있다. 대감집처럼 넓은 크기는 아니고 아담한 크기이지만 여기에 앉아 있으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하게 내려오는 햇볕을 쬘 수 있다. 따로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 여자네 집의 안에 들어오면 처음 맞이하는 공간은 데크로 만들어진 마루였다. 이 마루에는 앉아서 등을 누울 수 있는 카펫과 쿠션이 마련되어 있었고 천장의 빔프로젝터를 통해 영상을 볼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더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가운데 대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침실, 좌측에는 주방이 있다. 대문을 통해 마당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며, 문을 다 열어두면 건너편의 한옥마을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다. 작은 창문이 아닌 시원한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거리의 뷰는 서울에서 바라보던 거리의 뷰와는 느낌이 달랐다. 거리의 풍경은 유독 여유로워 보였으며 햇살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침실에 있던 낮은 침대는 땅과 가까워서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옥의 서까래 컬러와 잘 어울리는 화이트톤의 침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하였다.



침대 앞에 놓인 커튼을 걷어냈더니 차를 마실 수 있는 상이 나온다. 대개 차를 마시는 공간은 주방의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따로 공간을 분리해서 차를 마시는 행위에 몰입할 수 있게 하였다.



다른 공간에 비해 주방의 크기가 컸었다. 높은 천장 아래 놓인 유명 리빙 브랜드의 시그니처 조명과 테이블은 공간의 감도를 끌어올려 주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은 시집의 내용처럼 사랑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날로그적인 주방 기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커피 원두를 갈 수 있는 그라인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드리퍼 등을 이용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호스트의 취향이 묻어난 것 같았다.



욕실 앞에 있는 세면대에서도 호스트의 취향이 드러난다. 세라믹이 아닌 대리석으로 세면대를 만들어서 공간의 느낌과 잘 어울리는 느낌을 만들었으며, 그 아래에 수건을 정갈하게 정돈하였다.



욕실 안에서도 호스트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좋게 욕조를 비치하였고, 욕조에 앉아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도록 식물을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짐을 풀어두고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 낮에는 사람들로 인해 가득 찼던 이 거리가 저녁에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의 발걸음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시간은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낮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집에 온 것 같은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진다. 

낮에는 태양의 햇살이 따뜻함을 전해주었다면, 밤에는 스테이 안에서 나오는 불빛이 따뜻함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만약 일상에서 이런 집에 살았다면 하루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위로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간단히 먹을 것을 세팅하여 머리 식힐 준비를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비우는 것이니만큼 심오한 콘텐츠보다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작은 화면으로만 보던 OTT의 콘텐츠를 빔프로젝터로 보면서 등을 대고 쉴 수 있었던 시간은 유독 여유로웠다.



다음 날 아침은 호스트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조식을 먹었다. 그 여자네 집에서 5~10분 정도 거리, 이른 아침이다 보니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기분 좋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다녀올 정도였다. 호스트의 카페는 알고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운영을 한 곳이었는데 축적된 시간만큼이나 안정적인 퀄리티의 조식을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의 목적이 비움으로 바뀐 이후로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관점에서 숙소를 고를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얼마나 나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화려한 뷰와 즐길 거리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잘 들어오는지? 공간이 주는 느낌은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가졌는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드는지? 같은 것이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 관점에서 그 여자네 집은 만족스러운 스테이였다. 낮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마당을 맞이하면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과 조명, 높은 층고의 공간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은 일상에서 바쁜 시간을 잊고 지내기에 충분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영감의 숙소. 바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곳에서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잠깐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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