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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에 걸쳐 기억이 쌓이는 스테이 : 월정느루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햇살의 온기를
닮은 공간


글ㆍ사진 고서우


장미 한 송이가 제가 지닌 향기를 다 표출하는 데에는 열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꽤 긴 시간인데.'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나누고 있는 수많은 공간 기억의 장소 중에서 가장 긴 시간에 걸쳐 기억이 쌓이는 '스테이'가 떠올랐다. 바다가 가까워, 몇 걸음만 대문 밖으로 마중을 나가 코로 그 공기를 확 훔쳐보면, 소금을 뿌린 바람의 내음이 느껴지는 곳 '월정느루'.


'월정느루'에 대한 기억은 버스를 잡아타고, 오른편으로 얼굴을 했을 때

잠깐은 눈을 감도록 부시던 햇살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머물렀던 객실은 '느루, 온'. 작은 백색소음을 내며 묵직이 열리는 문을 넘어섰을 때 아까부터 따라와 여기 잔잔히 멈춰있는 햇살이 마당 한 켠 짙은 초록빛의 조경수와 맞닿으며 편안한 색감으로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도어록을 해제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기 전, 짐을 내리느라 한 발 올라선 발에 온기가 전해진다.



이어서 그 온기를 닮은 햇살이 다시금 눈으로 들어온다. 주방의 배경이 되는 넓은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들이었다. 마당에서보다 훨씬 따뜻한 색으로 길게 들어온 모습은 그리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성큼 다가가게 했다.



주방과 그 조리대 위에 올려진 이것저것을 바라보다, 대면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았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뒤로 쏟아지는 저 햇살 때문에 모든 것이 아른아른하게 변했지만, 달리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윽고 자쿠지에 따뜻한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채워지는 시간 동안 과일을 씻고, 카나페도 만들며 함께 자리해 준 친구들과의 담소로 소리를 채우기도 했다.



우리 모르는 그사이에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자욱만 남기고, 어둑한 저녁 색깔은 자쿠지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뽀글거리는 스파클링 와인의 기포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뜨겁게 데워진 물 안에 시린 두 발을 담그니, 머리끝까지 더운물에 잠긴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가 추운 계절을 기다렸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하며.



노곤해진 기분으로 검푸른색 하늘을 바라보다, 장작에 불을 지펴 그 위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 굽는 냄새에 얼굴 유난히 동그란 고양이도 왔다. 그리 티 나게 추위를 타면서도 서로가 연신 괜찮다며 들어가길 미뤘던 시간.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모든 불을 껐다. 하루가 길었기에 바로 잠자리에 들 참이었다. 침대에 내 온기가 가득 찼을 즈음에 물 한 잔 마시고 싶어져 맨발로 마룻바닥을 밟고 섰을 때, 문득 생각하게 됐다.


'머물러 있는 긴 시간에 걸쳐, 기억을 남기려 애쓴 공간이다.

마치 장미 한 송이가 제가 지닌 향기를 천천히 표출하듯이'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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