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 없는 세상
AI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더 강한 AI일까요. 아니면 AI를 대체하는 또 다른 무엇일까요.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더 거슬러 올라가 활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활자가 나왔을 때, 기억을 바깥에 내어놓는 것이니 생각을 도둑맞을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마냥 반기지만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있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인 AI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AI 다음엔 어떤 세상이 올 것 같아?”
여러분도 쓰고 있는 AI가 있다면, 물어보세요. AI가 주인을 닮아간다고 하니 각자 조금씩은 다른 답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꽤 흥미로운 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았습니다.
“뇌과학이 발전해서 인간이 더 이상 언어로 소통하지 않게 된다면, AI는 어떻게 될까?”
답은 의외였습니다.
지금의 AI는 언어 기반의 패턴과 구조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기능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뇌파를 이용한 새로운 소통 방식이 연구되고 있고, 그 신호를 학습하게 된다면 단어의 조합으로 제한되었던 인간의 비언어적 상태까지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조금 섬뜩한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인간은 생각을 말로 정제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왔지만, 만약 그 과정이 사라진다면 내면이 의도와 상관없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점에 이르면, 어디까지가 ‘나’인지에 대한 경계를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니, 이건 철학수업에서 들은 것 같은데?”
산업혁명은 인간의 몸을 외주화 했습니다.
기계가 팔다리를 대신했고, 인간은 그 위에서 방향을 정하는 존재로 남았습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적어도 생각은 인간의 몫이었죠. 그래서 넘쳐나는 ‘도구’들을 잘 설계하고, 좀 더 편리하게 연결해 주는 서비스업이 폭발적으로 생겨났죠. 인류는 그렇게 그들의 역할을 찾아 주도권을 지켜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AI는 판단과 지능을 외주화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코드를 짜고, 분석을 하고, 때로는 감정의 결까지 읽어냅니다. AI에 고민 상담하는 분이 많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생각을 시작하기보다,
이미 제안된 생각을 고르는 쪽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외주화가 끝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묘하게 불편한 이유는,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충분히 묻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AI 다음 단계가 또 다른 지능의 혁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아의 구조가 바뀌는 단계가 오지 않을까요.
AI가 사고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서,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순간 말입니다.
“이 생각은 정말 내 것일까.”
예전에는 철학수업 때나 들었을 법한 말인데.
이제는 일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지금 AI시대에 흔히 이런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은 네 글인가’. ‘이 리포터는 AI 지분이 어떻게 되나’. ‘너 설마 내 카톡에 답장도 AI가 썼니?’ 등등
검색 없이 사실을 떠올리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AI가 초안을 쓰면 우리는 그것을 다듬는 사람이 됩니다.
나의 언어와, 내가 아닌 것의 언어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카카오톡에 “ㅇㅋ” 한 글자를 보내고 나면,
그 뒤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예전 같으면 얼굴을 보고, 표정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던 시간이
어느새 필요 없어졌습니다.
언어는 우리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언어가 없는 세계.
말 대신 경험 자체를 전달할 수 있는 세계. 감정을 느낌을 그림처럼 냄새처럼 그대로 전달하는. 영화 코쿤에 나오는 외계인이 사랑을 교감하는 방식 같은.
오해도 없고, 번역도 필요 없고,
말로 다 담지 못한 감정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세계.
언뜻 보면 더 완전한 소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언어에는 중요한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을 제한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을 고르면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줄이고, 다듬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만약 아무런 필터 없이 경험이 그대로 전달된다면,
그건 소통일까요.
아니면, 서로의 세계에 대한 침입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세계 일부를 포기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자, 인쇄술, 전화, 인터넷, 그리고 지금의 AI까지.
소통은 분명 더 빠르고, 더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은 더 희미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역설이라기보다
하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인간을 덜 깊게 소통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깊게 소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편리함이
상상력을 대신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요.
우리는 더 잘 소통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다르게 소통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일까요.
오해 없이 이해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보다는,
얼마나 깊이 서로에게 닿는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전달되는 말보다,
조금 어긋나더라도 오래 남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문장보다,
한 번의 침묵이나 눈빛이 더 많은 것을 남길 때도 있습니다.
AI는 빠르고 정확합니다.
하지만 이런 닿음에는 아직 약해 보입니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 작은 파문을 남기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진보’라고 부릅니다.
더 나아지는 것, 더 쌓여가는 것.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편리함을 얻으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 결핍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결핍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어쩌면
발전은 축적이 아니라,
결핍이 만들어내는 반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완성을 향해 가는 존재라기보다,
완성이 남긴 빈자리를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다음 세상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채로,
누군가에게 닿으려 애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어쩌면 우리가 가진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 글을 읽고 나서,
한 번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깊이 닿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때, 그 사이에는
언어가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