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 또한 사랑과 소멸에 대하여

by STAYTRUE

2003년 개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며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 소설이 있는 영화이다. 개봉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인만큼 많은 의견이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조제(실제 이름은 쿠미코, 이케와키 치즈루)가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조제와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겨울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때가 그립다는 츠네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속이 가려진 유모차를 몰고 다니는 이상한 할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의문을 시작으로 츠네오가 할머니와 유모차를 맞딱트리게 되면서 그 안에는 보물도 무엇도 아닌 한 여자가 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공격적인 조제는 할머니에게 매일 산책을 부탁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조제를 가릴 수 있는 만큼 가리고, 그도 모자라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산책을 시켜준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 가서 밥을 자주 먹게 되고, 조제의 요리 실력과 까칠한 그녀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거의 매일 조제의 집을 찾아가는 츠네오는 그녀가 아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조제는 학교에 갈 수 없기에 할머니가 주워 오시는 책들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읽어서 다 외워버렸다는 조제는 그동안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외로웠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한달 후 일년 후>를 좋아하는 조제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조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함으로써 세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읽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사랑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것이라고. 이 소설의 속편인 <멋진 구름>이라는 책을 갖고 싶어 하는 조제를 위해 츠네오는 헌책방에서 구해 선물해 준다. 책을 읽으며 웃음을 짓는 조제를 보며 츠네오는 기쁨을 느낀다.

주무시는 할머니를 두고 츠네오는 조제와 함께 낮 산책을 나간다. 어떠한 것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제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멋진 구름을. 그렇게 츠네오는 조제에게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도 잠시 할머니는 조제에게 “넌 불구야. 불구면 불구답게 분수를 알아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남 노는 대로 놀다간 벌받는다.”하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조제의 유일한 가족인데 조제는 그 안에서 세상과 가로막힐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우연히 맞닿은 츠네오의 손가락을 피하는 조제와 그런 조제의 손을 잡는 츠네오. 부끄러워하는 조제는 카나에가 방문했을 때 츠네오와의 대화를 들으며 문을 닫아 버린다. 조제에게도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집으로 찾아온 츠네오를 문 밖에 두고 책들을 마구 던지는 조제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츠네오에게 말한다. 댁 같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다고. 이렇게 할머니는 조제를 세상에서 철저히 단절시켜 버린다. 그렇게 할머니에 의해 만남을 끊어버린 둘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 조제를 질투해 네 무기가 부럽다고 말하는 카나에의 모습을 보면 모순적임을 알 수 있다. 복지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서 나온 행동이라 더 놀라운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과 타인의 큰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그런 카나에에게 조제는 장애인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써 대처한다.

1년째 같이 살고 있는 둘. 츠네오가 고장 난 유모차를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의 변화가 왔음을 알게 해준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던 중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츠네오에게 먼저 말을 꺼내 둘만의 여행으로 바꾼 조제는 둘의 사랑이 기실 많이 변해있음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찾아간 수족관이 휴관 이어 짜증이 내는 조제를 츠네오는 좋게만 볼 수 없고, 터널을 지나가는 중 신이 난 조제에게도 큰 대꾸를 해 주지 않는다. 또 휠체어를 사야겠다는 츠네오의 대사들은 그가 이 사랑이 조금씩 벅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들이 간 여관에서 조제는 고백한다. 그동안의 자신이 살던 곳은 깜깜한 곳이었다고. 빛도 소리도 바람도 비도 없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이제 헤엄쳐 나왔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에 외롭지 않다고. 하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다고 말하는 조제는 네가 사라지면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거라고 말한다. 이곳에 오기 전 들렸던 바다에서 그녀가 왜 손에 가득 조개껍데기를 움켜쥐었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게 어둡고 외로웠던 조제의 삶에 츠네오가 함께 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여느 연인들과 같이 둘은 헤어지고 만다. 담담한 모습으로 헤어진 둘. 츠네오는 다시 카나에를 만나 길을 걷는 중 조제를 떠올리며 운다. 헤어지고 친구로 남기도 하지만 조제는 아니라며 조제를 다시 만날 일은 없다는 츠네오의 대사는 그가 정말 장애인에 대한 연민이 아닌 조제 자체를 사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츠네오는 조제의 약점마저도 사랑했다. 그러나 츠네오에게도 약점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강점들을 통해 사랑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며 이뤄가는 사랑도 있다. 그렇다면 그 약점이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제만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츠네오는 단지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조제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과의 벽을 세우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만이 아닌 츠네오의도움도 컸다고 본다. 또 이전까지 가벼운 여자관계를 이어왔던 츠네오에게 조제는 진정한 관계에 대해 깨우칠 수 있게 해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다는 것에서 둘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장애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그냥 남녀의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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