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자기 아버지와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이가 말이 없었다기 보다는 아버지가 말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밖에서 팽이치기 놀이를 하며 신나있던 아이에게 들려온 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자리를 뜨고 없었다. 아버지가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된 회초리를 들고 아이를 찾아오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왜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아버진 아무말도 하지 않으시고 무작정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끌려 가며 친구들과 있던 자리를 뒤돌아 보았다. 친구들은 다시 모여 아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팽이놀이를 이어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창피했지만 창피하지 않았다. 익숙해 질만큼 반복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가서 아버지는 아일 무릎 꿇려 놓으시고는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하셨다. 한참 후에 장을 보러 나가셨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얘는 왜 이러고 있어요?" "......." "아이고, 훈아 방으로 가라." 일어선 순간 오래 앉아있던 탓에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휘청거리는 뒷모습이 자신의 자존심이라 생각하여 아이는 몸에 한껏 힘을 주고 걸어 나왔다. 마당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마당 한 가운데 있는 대추나무에 걸린 대추 세개를 따왔다. 흙이 묻은 소매로 대추를 닦아 세 알을 한 입에 다 넣고는 우걱우걱 씹어댔다. 대추 세개와 눈물이 섞이니 대추 맛은 제법 짭짤했다.
그 날의 일이 생각나서 였다. 내 아내가 오늘 아침 밥을 먹던 중에 둘째 딸을 때렸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징징 대던것이 그 이유였다. 어릴 때의 나처럼 평소에 많이 맞았는지 어린 딸은 당황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딸은 징징거리던 것을 멈추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나도 모를 어떤 분노의 것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밥상을 엎으며 왜 아이 몸에 손을 대냐며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엎어진 반찬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고 두 자식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한 아이는 엎어진 밥상을, 한 아이는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옷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와 곧장 일터로 갔다.
오늘 아침 내가 한 짓에 대한 후회와 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퇴근길에 통닭 두마리와 술을 한병 사서 귀가했다. 아이들은 아침의 일은 잊었는지 나에게 달려와 안기며 나를 반겼고 내 손에 들린 통닭 냄새를 맡고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내는 내 짐을 받아 말없이 정리 해주고는 상을 차려왔다. 나도 뻔뻔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상 앞에 앉자 아내가 아이들에게 살을 발라주고, 아이들은 그 발라진 것들을 먹고, 나는 술을 들이켰다. 취기가 올라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고개숙이고 울어버렸다. 한동안 우리 집에는 정적이 흘렀다. 둘째 딸이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아서는 나를 안아주었다. 바닥을 짚고 있던 거칠고 투박한 내 손 위로는 아내의 고운 손이 포개어졌다. 첫째 아들은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괜히 더 서러워 지는 것이 오늘따라 그 시절의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내일은 오랜만에 아버지 산소엘 가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