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에 현혹되었나
<추격자>와 <황해>로 많은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나홍진 감독은, 6년 만의 신작 <곡성>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는 폭력성이 짙던 전작들과는 달리 폭력성을 배제한, 다소 상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다. 개봉 첫날 30만 관객을 기록하여 국제시장, 변호인보다도 높은 오프닝 기록을 세운 영화다. 2시간 36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영화의 이야기 속에 현혹시켰다가, 영화가 끝난 후에는 더욱이 헤어 나올 수 없게 하는 굉장한 몰입감이 있는 영화다. 상영 이후로 계속해서 많은 관객들의 담론이 끊이지 않는 영화인데, 그렇다면 이 영화는 졸작일까 걸작일까?
전남 곡성의 한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곡성은 오프닝부터 개운치 못한 느낌을 주며 시작한다. 한 가족에게 벌어진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그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직접 그 소문의 대상을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문을 믿고 그 소문의 대상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소문의 가운데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외지인(쿠니무라 준)이다. 조씨의 살인 현장에 의식을 치른 흔적과, 외지인에게 겁탈 당한 후에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여자의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이 옮기며,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이 외지인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범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다. 이 부분들은 예수님이 계시던 당시 사람들로부터 핍박받던 성경의 이야기가 연상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외지인이 일본인이라는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굉장히 의도적인 부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외지인인 그는 대체 왜 이 마을에 온 것일까. 그를 의심하며 그를 조여오는 종구에게 외지인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하여서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거라는 말만 할 뿐이다.
초반부터 코믹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던 영화는, 종구의 딸 효진(감환희)에게까지 그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함으로써 더욱이 공포를 심화시키며 관객들을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끔찍하게 이어져 나간다. 관객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영화상에서 분명히 일어나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효진을 위해 살굿을 하는 무당 일광(황정민)의 모습과 교차편집되어 보여지는 외지인이 어떠한 의식을 하는 듯한 장면은 가장 큰 혼란을 야기하는 장면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무엇에 의심의 여지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살을 날리는 대상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은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감독의 의도를 지나칠 수 있는 다소 얍삽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과 일광이 같은 편인가에 대하여, 사실 영화는 곳곳에 복선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일광이 차를 끌고 마을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왼쪽 차선으로 오고 있는 것과, 일본인과 같은 훈도시를 입고 있던 것, 또 일본인의 집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사진들이 일광에게로 전해진 것 등. 처음부터 이 둘이 한 패가 아니라면 이 모든 것들은 관객 우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영화는 진실을 이따금씩 일러주지만, 이미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보여지지 못할 뿐이다.
영화의 후반, 동굴 속에 있는 외지인에게 간 부제 이삼이 본 장면은 지극히 충격적이다. 영화 초반 누가복음 24장 37-39절 말씀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내비치는데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대상은 예수 코스프레를 하는 외지인이다. 그의 모습이 악마처럼 변모되어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던 성흔과 같이 나타남을 보았을 때 이삼은 과연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믿었을까. 영화 내내 보지 못한 것들을 의심하고, 또 그것을 믿던 마을 사람들처럼 이삼 또한 보지 못한 것을 믿고, 본 것에 대해 의심을 했을까?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고 믿고 싶은 걸 믿어버리는 사람들, 나조차도 영화를 보는 내내 보여지는 것들에만 현혹되어 그 너머에 자리한 진실에 무뎌졌던 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명(천우희)의 존재에 대하여서, 그가 신적인 존재, 혹은 수호신의 개념이라면 결국 어떤 일들이 분명히 일어남에도, 일어나려 함에도 결국 일어나 버리는, 즉 무명 또한 그 일들에 있어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렇게 영화는 인간과 신의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서도 말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상징들과 여러 맥거핀이 난무하는 영화 곡성은, 여러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있다. 과연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정말 탄탄한가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난 몇 년간 한국 영화상 많은 관객들의 담론을 일으키고, 나홍진 감독의 새로운 장르 개척에 물꼬를 튼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장치들의 의도를 하나하나 알 수는 없다. 때문에 내 머릿속 여백으로 남은 궁금증들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한 채 조각들로 흩어져 있다. 그럼에도 좋지 않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감독님의 명쾌한 해답 또한 알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독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다소 비상업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구성함에 있어서 한 가지 장르만 택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무속신앙, 오컬트 등을 한데 섞어 놓았기 때문에 영화가 조금 정신없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각본을 쓰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 준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