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

수많은 태풍을 지나보내며

by STAYTRUE


소소한 이야기인 듯해 보이지만 사실 인생 전부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다시 한 번 선사하는 가족 이야기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우리 삶에 대해 조명하며,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그려냈다. 원제는 바다보다 더 깊이. 걸어도 걸어도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노래 제목에서 따온 제목이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사람 없는 식탁'이라는 소설로 과거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지만, 현재는 사설탐정 일을 하는 중이다. 아내 쿄코(마키 요코)와의 이혼 후에 그녀의 뒤를 밟기도 하는 모습은 과거를 놓지 못하고 다소 허망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월급을 경마, 복권에 탕진하며 정작 중요한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모습은 료타가 꼭 변해야만 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료타에겐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해 연립주택에 홀로 계신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가 있다. 이곳에 이혼한 쿄코과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와 방문하게 되고, 태풍으로 인해 하룻밤 묵게 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소소한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는 이 료타 가족을 관망하며 어딘가 모르게 내 삶의 답답함 또는 무력함을 치유받게 된다.


료타의 아들 싱고가 아빠에게 하는 질문인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라는 말에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그 경험들을 통해 우린 성장해 나가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혼했더라도 내가 싱고의 아빠인 건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상황이 변해가도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때로는 그 사실들이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될 때가 있음에 위로받곤 한다.


료타의 '내 인생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건지'라는 메모처럼, 왜 각자 원하는 삶대로 살지 못한 걸까. 혹여나 그 삶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은 삶이진 않았을까? 어쩌면 헛된 꿈만을 좇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한 일침이 되기도 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자신의 그간 인생이 자신의 소망에 관통하지 못함이 아닐까? 고레에다 감독은 결코 소소하지 않은 가족 일원의 죽음에 대해서도, 남겨진 가족들의 남겨진 인생에 대해서도 꽤 소소하게 담아낸다. 사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동일 선상에 자리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죽음이 오기까지 살아내고야 만다. 현재의 삶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다른 방법은 없다. 결국엔 또 가고 가는 것만이 정답이다. 요시코의 말처럼 그래도 살아가는 거다. 그것도 날마다, 즐겁게. 또 다른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해선 쥐고 있던 것을 놓을 줄도 아는 용기, 그게 중요한 거다.


비록 지금의 삶이 바다보다 깊지 못하더라도, 하늘보다 더 푸르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우리 모두가 바다보다 더 깊게, 하늘보다 더 푸른 삶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간다. 료타가, 료타 가족이 꿈꾸던 기적은 영화 내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소소한 위로가 되어주는 영화다. 그 삶 속에서 그들 또한 변화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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