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이야기

생명의 숨고르기

by Surelee 이정곤


불갑사로 이어진 수변공원을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주변엔 벌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서는 개미들의 행렬이 전광석화처럼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태풍 소식을 늦게야 알았다. 그러나 자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와 압력의 변화를 먼저 읽어내는 건 언제나 작은 생물들이다. 낮게 기어가던 뱀은 서둘러 몸을 감추고, 거미는 아침까지 공들여 지은 거미줄을 스스로 뜯어내며 사라진다. 꽃 사이를 오가던 벌도, 귀찮게 따라다니던 날파리도 어느새 종적을 감춘다.
바람이 한 차례 세차게 흔들고 간 뒤, 갑작스레 찾아온 고요. 긴장된 공기가 감도는 그 순간, 사람 또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창문을 닫고, 마당의 화분을 안으로 들이며, 태풍의 왕림 앞에서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비가 쏟아진다. 무자비한 폭우지만, 동시에 해방의 숨결을 품고 있다. 들과 산을 흔들고, 마을의 골목까지 씻어내린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먼지와 열기를 훑어내며, 세상이 다시 새로워지는 듯하다.
태풍은 파괴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쉼과 정화의 리듬이 숨어 있다. 분주한 침묵, 격렬한 폭우,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고요까지. 자연은 이렇게 스스로의 질서를 조율한다. 생명은 그 순환 속에서 다음 날의 숨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삶이든 그 여정에서 태풍이 가끔 찾아온다. 모든 것을 흩트리고, 씻어내고, 다시 정리하는 순간이다. 소란스러웠던 하루의 감정, 마음 한켠에 켜켜이 쌓여 있던 작은 먼지들까지, 태풍은 우리에게도 가끔은 닥쳐야만 하는 자연의 숨고르기다.
내 인생에도 태풍이 찾아왔다. 그 이름은 파킨슨.
처음에는 무너져 내리는 하늘 같았고,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는다. 이 태풍 또한 나를 정화하는 힘일 수 있음을. 서두르던 삶의 보폭을 멈추게 하고, 잊고 있던 고요의 숨결을 들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우가 스쳐간 자리에 새싹이 돋듯, 내 삶 또한 태풍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 그 힘이 나를 앞으로 이끌고, 언젠가 또 다른 꽃을 피워낼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야만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 나의 인생 또한 이 거센 바람을 지나 더 깊은 빛과 더 단단한 생명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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