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방향, 본능의 틈새
야생의 방향, 본능의 틈새
오랜만에 산행이다.
올가을은 어딘가 설익은 느낌이다.
익기도 전에 출하된 땡감처럼, 가을이 완전히 무르익기도 전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예년 같으면 지금이야말로 산 오르기 좋은 계절인데, 올해의 가을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듯 조금 서두른다.
집에서 배재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 남짓.
그 길을 오를 때마다 나는 양말이라는 개와 함께한다. 혹시라도 산짐승이 나타날까봐, 또는 외로움이 먼저 다가올까봐서다.
하지만 오늘은 양말이가 없다.
목줄을 미리 풀어둔 탓에 중간쯤에서 대열을 이탈하더니 ‘님’을 만나러 가버렸다.
녀석이 없으니 허전하지만, 옆에 단짝 친구가 함께라 덜 쓸쓸하다.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길에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멧돼지 같은 산짐승이 공격해온다면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으로 피하는 게 유리할까?”
별것 아닌 상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의 숨결이 자연의 본능과 닿아 있는 듯했다.
짐승에게 방향은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생존의 언어이자 본능의 신호다.
짐승의 뇌 한쪽, 어두운 반구에는
공포와 공격의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반응은 언제나 왼쪽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짐승은 왼쪽 시야나 왼쪽 움직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짐승의 오른쪽,
즉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왼쪽 방향으로 몸을 피하면 그 짧은 순간만큼은 짐승의 본능이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 바로 생존의 틈새다.
야생의 법칙 속에는 계산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방향의 질서가 있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공격이 아니라 틈으로 나아가는 감각 —
그게 살아남는 지혜다.
나는 숨을 고르며 산길 중턱에 멈춰 섰다. 바람이 오른쪽에서 불어왔다.
그 바람결에 떨어진 낙엽 하나가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왼쪽으로 피하려다 멈추고,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섰다. 그 한 걸음의 방향이, 문득 인생의 이치를 닮아 있었다.
우리의 삶도 야생과 다르지 않다.
세상의 위협이나 불안이 닥쳐올 때
우리는 본능처럼 정면으로 맞서려 한다.
하지만 때로는 한 발 비켜서 상대의 본능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이 더 큰 용기이자 지혜일 때가 있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양말이는 보이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저만치서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녀석이, 오늘은 여자친구에게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다.
아마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길은 언제나 정면이 아니라, 조금 비켜 선 자리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