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
눈치,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
"눈치가 없다"
누군가 내게 한 말은 아니지만,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들면서 모든 감각이 둔해진 탓이겠으나 요즘 부쩍 나의 '눈치'는 저공비행을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니 '눈치채다'의 의미를 '타인의 감정, 분위기, 암묵적인 기대나 상황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쓰여있다.
쉽게 말해 그 뜻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호를 읽고 반응하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원래 '눈으로 치수를 잰다'는 의미로 눈치라는 말이 생겨났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눈치는 귀로 듣지 않는다. 눈으로 보거나, 가슴으로 짐작하는 것이다.
말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 말의 방향을 먼저 알아채는 감각. 고요한 방 안에 풍경처럼 떠 있는 공기 한 자락, 그 속을 흘러다니는 마음의 결. 눈치는 그 미세한 결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현희는 말보다 먼저 사람을 읽었다. 침묵의 무게, 눈길이 닿은 자리, 한숨의 길이 속에서 누군가의 슬픔을 알아챘다. 그것은 훈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감각이었고, 공감을 위한 노력이었다. 말로 묻지 않아도 손을 내미는 일. 어쩌면 말보다 더 정중한 대화.
재심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상대의 얼굴빛, 그날의 기운, 밥 한 술 뜨는 속도까지 살피며 스스로의 톤과 말끝을 조절했다. 그녀에게 눈치는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오래된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온 연장의 지혜였다. 그러나 문득, 그런 자신이 자꾸만 투명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넌 왜 그렇게 잘 맞춰?"라는 말에 웃으며 넘겼지만, 그날 밤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곤은 달랐다. 그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믿었다. 표현은 곧 책임이고, 솔직함은 존중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눈치란 때로는 피로했고, 불필요한 해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날, 현희의 조용한 눈빛이 자신보다 자신을 먼저 알아차릴 때,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말보다 앞서 도착한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어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다치지 않게 품어주는 포장지다. 무례하지 않게, 어긋나지 않게, 상처 없이 지나가기 위한 작고 섬세한 기술. 하지만 그것이 너무 얇으면 쉽게 찢어지고, 너무 두꺼우면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눈치는 관계의 온도를 맞추는 예술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타인에게서 내가 사라지고, 너무 멀리 물러나면 진심이 닿지 않는다. 그 사이, 말과 말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 눈치는 언제나 그 틈에 머물며 잔잔한 균형을 이룬다.
눈치는 완성된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새롭게 조율되는, 사랑의 방식이다. 눈치 있게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 혼자만의 리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박자를 듣는 일이다. 말보다 먼저 마음이 도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오래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