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감옥 ― 나는 누구인가
이름이라는 감옥 ― 나는 누구인가
"나는 00 이다."
이 짧은 문장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서둘러 입에 올리는가. 나는 학생이다, 직장인이다, 엄마이다, 작가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며, 정체성을 단정짓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정체성의 문장'은 마치 감옥과도 같다.
규정은 질서유지의 수단으로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자유를 앗아간다. 어떤 말로도 나는 나를 다 담을 수 없고, 어떤 이름도 나의 모든 가능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이름표를 달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름조차, 대부분은 내가 짓지 않았다.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가 내게 이름을 부여했고, 나는 그 이름으로 불리고, 그 이름으로 문서에 기록되고, 결국 그 이름으로 나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름은 얼굴과 같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로서 구별되게 해주는 인식표. 하지만 타인이 만든 이 인식표에 나는 스스로를 걸어둔 채, 평생을 살아가는 셈이다.
이름짓기가 통제의 시작은 아닐까? 누군가를 명명한다는 것이, 그 존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면 지나친 억지인가?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사회적 권력이 작동하는 장치이고, 타인의 시선과 기대가 집약된 형태다. 이름은 불리는 동시에, 규정되고, 취급되는 방식이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기 전에 이미 나를 규정한다. 마치 거울 앞에 서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내 얼굴을 묘사해버린 것처럼. 나는 그 타인의 언어로, 그들의 기대와 기준 안에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규정해온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훨씬 유연하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가?
'나는 작가이다'라고 말하면, 글을 쓰지 않는 순간 나는 불안해진다.
'나는 활동가이다'라고 말하면, 조용히 쉬는 시간이 죄책감이 된다.
이름은 나를 설명하는 수단인 동시에, 나를 속박하는 굴레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존재,
나는 이름 너머의 가능성,
나는 계속해서 되어가는 중이라고.
이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이름이 아니다. 나는 이름을 가진 존재이지만, 그 이름에 갇히지 않는 존재다.
이름을 벗는 연습, 혹은 이름 너머를 보는 연습.
그것이 진짜 나와 마주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