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놀이
나는 오늘도 PLAY 한다
태국의 반끄릇 해변을 혼자 걷는 시간 속에서 사색이 깊어졌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Play.
머릿속에서 이 단어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어쩌면 play일지 모른다.
그만큼 이 단어는 인생의 거의 모든 국면을 관통한다.
더 들여다볼수록, play는 어떤 삶이든 은유로 풀어낼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Play.
그것은 마치 삶의 복합적 구조와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태어난 단어 같다.
익숙하고도 친숙한 이 단어를 인생의 흐름에 따라 연결해보면 그 유사성과 상징성이 놀랍도록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인생을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노년기, 그리고 황혼기로 나누어 play라는 단어의 의미를 각 시기에 대응시켜보면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다.
아동기에는 ‘놀다’(to play)가 중심이다.
놀이는 자유, 창의성, 가능성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그 시절의 play는 무한한 상상력과 실수조차 허용되는 순수한 삶의 형태다.
청소년기는 게임과 연결된다.
‘게임하다’(to play games)라는 표현은 경쟁과 협동의 시기를 은유한다. 이 시기의 play는 규칙을 익히고, 이기고 지며, 실패를 겪고 다시 일어서는 연습이다.
성년기에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우리는 ‘배역’을 맡는다.
‘역할을 하다’(to play a role)라는 말처럼, 삶의 무대 위에서 매일 무언가를 연기한다.
그 연기는 진심일 수도, 생존일 수도, 혹은 그 경계 어딘가일 수도 있다.
노년기는 한걸음 물러서는 시간이다.
삶의 주 무대에서 벗어나, ‘조용히 흐르는 배경음악처럼’ 살아간다.
To play softly. 혹은 background play.
여전히 존재하지만 중심은 넘겨주는 지혜의 시기다.
그리고 황혼기.
무대의 막이 서서히 내려온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질 때, 박수 속에서 삶의 흔적을 정리한다.
Play ends. 그러나 그것은 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름다운 퇴장이다.
이렇듯 삶과 play의 구조적 유사성을 들여다보는 일은 신비롭고도 흥미롭다.
놀이라는 행위는 실수와 창조 사이의 긴장을 품고 있다.
게임은 경쟁과 협동, 실패와 리셋, 랭킹이라는 인생의 역학을 담고 있다.
연극은 배역과 무대, 조명과 관객이라는 실존의 무늬를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play에 담긴 존재론적 관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간이라는 개별 주체는 고정된 본질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존재다.
그 연기 속에서 진실이 나오고, 가면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드러난다.
삶은 대본 없는 연극이고,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이자 관객이다.
그 실존을 받아들이는 순간,
play는 단지 놀이도, 게임도, 연극도 아닌, 인생 그 자체를 창조하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진지함과 유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석의 자유를 품은 살아있는 움직임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아침 사색 속에서 건져 올린, 나의 작은 기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