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정답과 해답의 경계(1)

길 위에서 흔들리는 나에게

by Surelee 이정곤

인간은 끊임없이 답을 구하는 존재다.

정답과 해답 사이에서.

모든 길 위에는 정답을 좇아가는 사람들과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답은 포장된 도로 같고, 해답은 비포장 도로 같다.

전자는 표지판이 친절하고, 목적지도 명확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다.

“이 길이 맞는 길입니다”라는 음성이 내비게이션처럼 반복되고,

그 음성에 따라 사람들은 속도를 높인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앞서가기 위해서, 틀리지 않기 위해서.

반면 후자는 비포장도로 위를 걷는다.

아스팔트 대신 흙먼지가 날리고, 발목을 잡는 돌멩이들이 널려 있다.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조차 모른다.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어 두렵지만, 바로 그 두려움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진다.


정답은 제도이고, 해답은 여정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답 중심의 교육을 받아왔다.

정해진 문제, 주어진 조건, 하나의 답.

‘맞힌 사람’은 칭찬받고, ‘틀린 사람’은 부끄러움을 배운다.

정답 맞추기는 지식 기반에 있다.

정답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산물이고, 정답을 잘 맞힌다는 건 곧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지혜 기반의 해답보다 지식 기반의 정답에 열광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답과 해답 사이에는 분명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정답 찾기에만 몰두한다.

왜?

정답은 빠르기 때문이다.

정답은 속도를 보장한다.

결과가 즉각적이고, 경쟁에서 앞서가는 감각을 선사한다.

그런 훈련은 우리를 ‘정답형 인간’으로 만든다.

정답형 인간은 효율적이고, 똑똑하며, 무엇보다도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질문보다 ‘답’을 선호하고, ‘왜?’보다는 ‘어떻게?’를 묻는다.

이들에게 삶은 경쟁이고, 실수는 낭비이며, 실패는 지워야 할 오류다.


해답은 '사는 것' 자체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삶이 정답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점에 도달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 떠나야 할 시점, 감당하기 힘든 상실—

무엇 하나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제야 우리는 해답형 인간이 되기 위한 입구에 선다.

해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어올리는 것이다.

이는 지혜를 구하는 방식이다.

가족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삶이 지독히 허무하게 느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물음에 진심으로 마주한 자만이 자신만의 해답을 만들어낸다.

해답은 내가 살았던 고통의 무게, 머뭇거림, 깊이 들여다본 내면 위에서만 자라난다.

해답은 느리다. 그리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더 아름답다.

정답은 마침표이지만, 해답은 쉼표다.

그 쉼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삶을 끌어안는다.


그 사이, 경계에 선 존재로서


정답과 해답의 경계에는 고뇌가 있다.

틀리지 않기 위해 정답을 선택하지만,

살아내기 위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경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사회는 정답을 요구하지만, 영혼은 해답을 갈망한다.

결국 우리는 둘 사이를 건너다니는 인간,

그 갈등 속에서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존재다.

때론 정답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해답만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온도를 품는다.

정답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지만,

해답이 있어야 길을 내며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답이 필요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해답이 없는 삶은 그 여정이 고달프고 공허하다.

우리는 빠르고 정확한 정답을 배워야 할 때도 있지만,

느리고 불완전한 해답을 견디며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오늘 이 아침, 나는 정답의 목소리에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해답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더디고 불확실하더라도, 그 길 끝에서

비로소 ‘나’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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