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정답과 해답의 경계(2)

심마니와 등산객

by Surelee 이정곤

오랫만에 등산을 했다. 불갑산 연실봉까지.
산을 오른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오르막을 걷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캐고, 방향을 정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산이지만, 심마니의 길과 등산객의 길은 다르다.
그 차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이며,
정답을 좇는 삶과 해답을 찾는 삶의 차이이기도 하다.

정답을 아는 심마니의 길

심마니는 산을 안다.
그는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계절마다 열매 맺는 자리를 기억한다.
그에게 산은 정답을 품은 장소다.
오늘도 그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산에 오른다.
삶은 채집이다.
정보와 경험, 타이밍과 기술로 보물을 ‘확보’하는 행위다.
그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고, 손에는 반드시 성과가 들려 있다.
그는 삶을 정답의 연속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존재하고, 답은 반드시 있으며, 그것은 찾으면 된다는 믿음.
삶은 전략이고, 노력은 투입이며, 결과는 수확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강하고 명확하며, 시대는 종종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정답은 누가 정한 것일까?
그 산길은 누가 먼저 밟았기에 ‘보물이 있다’는 신호가 생겨난 것일까?

해답을 향한 등산객의 길

등산객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을 따라 오른다.
산을 오른다고 말하지만, 실은 삶의 무게를 풀어내는 시간이다.
그들은 산을 채집하지 않는다. 경험하고 느낀다.
등산객의 질문은 다르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길을 걷는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래서 그들의 산행은 곧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순례다.
흙 냄새, 숨 가쁜 숨결, 땀방울, 마주치는 나무들.
이 모든 것이 답이 아닌 해답을 형성한다.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새기는 길.

그들의 길이 만나는 곳

심마니와 등산객은 결국 같은 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걷는 길의 철학은 다르다.
정답은 목표 중심적이고,
해답은 과정 중심적이다.
정답은 획득을 전제로 하고,
해답은 이해를 지향한다.
정답은 도달의 기술,
해답은 머묾의 예술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두 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때로는 심마니처럼 성과를 찾아 움직이고,
때로는 등산객처럼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산은 늘 거기 있다.
누구에겐 보물의 산이고,
누구에겐 사유의 산이며,
누구에겐 단지 숨 돌릴 공간이다.
심마니의 눈에는 ‘이익’이 보이고,
등산객의 눈에는 ‘의미’가 보인다.
그들은 모두 옳다. 다만,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삶의 얼굴이 달라질 뿐이다.
정답은 산의 좌표를 외우는 일,
해답은 산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일.
지금 우리는 어떤 산행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은 누가 정한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산길은
정답을 향한 걸음인가, 해답을 향한 사색인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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