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칡넝쿨, 그리고 날파리에게

집착과 무절제

by Surelee 이정곤


칡넝쿨, 그리고 날파리에게

이른 아침, 연흥사로 향하는 길을 걷다가 너희를 만났다.
해가 어둠의 뒷모습을 천천히 밀어내고, 산이 서서히 빛을 받아들이던 시간.
바람은 조용히 숨을 쉬고, 나무들은 제 그림자 속에서 느릿하게 깨어나고 있었지.
그 평화로운 길 위에서, 문득 너희가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단다.

칡넝쿨아,


어떤이는 너를 생명력의 상징이라 부르더라.
바위틈이든, 철망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뻗어가는 너의 끈질김을 대단하다며 감탄하지.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를 감고, 끝내는 숲을 덮어버리는 너의 저력에 놀라는 이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솔직히 불편했어.
네가 햇빛을 가리고 숨통을 조여버린 자리엔, 다른 생명들이 머물 수 없으니까.
네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누르는 모습에서, 난 ‘집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너와 비슷한 이들이 있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얽어매고,
책임이라는 말로 상대를 조이는 사람들.
스스로는 충만해 보이지만, 그 안엔 타인의 숨이 막혀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를지도 몰라.
너처럼 말이야.


그리고 날파리야,

너도 잊을 수 없었어.
작고 가벼운 몸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조용한 아침을 흐트러뜨리던 너.
손을 휘저어도 피하지 않고, 자꾸 돌아오는 너의 끈질김에 조금은 지쳐버렸어.
그런데 말이야,
너를 보며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어.
불필요한 말로 타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람.
도움이라는 이름의 충고, 관심이라는 핑계의 간섭.
말은 가볍다고 여겼겠지만, 그 말들이 얼마나 깊은 피로를 남기는지
너를 통해 새삼 느꼈단다.
한쪽은 너무 얽히고,
다른 한쪽은 너무 떠다니지.
하나는 뿌리로 조이고, 하나는 날개로 흔들고.
각자의 방식으로 평온을 깨뜨리는 너희를 보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
혹시 나도 누군가의 삶에 칡처럼 얽혀 있었던 적은 없었을까.
내 진심이 누군가에겐 무거운 그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날파리처럼, 말이 많아 그 마음의 고요를 어지럽힌 적은 없었을까.
그날 너희를 지나치며, 나는 이런 문장을 떠올렸어.
뿌리를 내리되, 얽어매지 말자.
움직이되, 시끄럽게 흔들지 말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건,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감이라는 걸
너희가 말없이 가르쳐주더라.
그래서 고마워.
불편했지만, 너희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어.
버려야 할 집착, 아껴야 할 말,
그리고 고요한 길 위에서 살아야 할 나의 태도를.
햇살이 따뜻해진 산길 위를
나는 다시 걸어갔어.
조금 덜 얽매이고, 조금 덜 떠다니는 마음으로.
칡넝쿨아, 날파리야,
이 작은 편지가 너희에게 닿기를 바라며,


– Mr. Positive가 보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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