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해안도로
가끔은 이유 없이 길이 부른다.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보다 먼저 발이 나서버리는 날.
그렇게 백수해안도로에 닿았다.
지도 한쪽, 바다와 나란히 눕는 길.
내보기에 그곳은 바람의 붓질로 그려낸 수채화 같다.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다.
왼쪽엔 밀물과 썰물의 치열한 순환이 서해의 뻘이 되고,
오른쪽엔 산이 넉넉한 등줄기를 펼쳐 들판 마을을 등에 업고 있었다.
말없는 풍경은 더 아름답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있다.
잔잔한 파도 소리, 가만히 흔들리는 나무잎들,
저 멀리 쪽배 하나가 빛에 반사되어 유유히 내 안에 흐른다.
그 때 마침 창을 두드리는 바람 한 점이 모두 문장이 되고 음악이 된다.
카페들이 풍경에 녹아 있다.
바다를 마주한 유리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커피향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누군가는 창가에 앉아 조용히 바다쪽에 시선을 맟추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찍고 있다.
그 고요한 틈 사이, 나도 잠시 멈추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데크 산책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길을 걷는다는 건 때로
내 안에서 오래 머물던 생각들을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묻지 않는다.
그저 살며시 스치며, 마음 깊은 곳까지 환기시킬 뿐이다.
바람은 손끝처럼 다정했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다정함 앞에 숨을 고르곤 했다.
산도, 들도, 바다도
모두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길 위에 눕고, 빛이 바다 위에 길게 풀어졌다.
그 순간 백수해안도로는
풍경이 아니라 ‘쉼’ 그 자체가 되었다.
삶이라는 긴 호흡 사이에서
잠시 멈추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났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 찾은 여행지가 아니었다.
백수해안도로는 다만,
마음의 온도를 되찾는 길이었고,
혼자가 아닌 듯한 풍경 안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햇살은 여전히 바다에 반사되어 쪽배의 기억처럼 눈부셨고,
멀어지는 풍경은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가 놓는 듯 아쉬웠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길의 바람은 가끔 내 어깨에 머물러 있을 지도 모른다.
백수해안도로.
그 이름으로 내마음에 바다가 밀려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