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마당에 내리는 기억

그녀의 가든, 나의 망치

by Surelee 이정곤

장마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빗방울이 처마 끝에서 조르르 흘러내리고, 빗물을 담아내는 크고 작은 그릇들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거울처럼 내마음에 걸려있다.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내 지난 세 해를, 고요히 들춰낸다.

귀촌 3년 차.

영광군 군남면 남창리, 산과 바다의 숨결이 오가는 그 마을.

조용한 한옥 두 채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나란히 낮춘 채 서 있다.

본채는 현희가, 별채는 내가 쓴다.

마치 내가 그녀를 옆에서 살포시 감싼 듯한 구조. 함께하지만, 서로의 고요를 지켜주는 거리감.

그 거리가 그런대로 좋다.

처음엔 본채 옆 공터에 가즈보(Gazebo)를 만들었다.

망설이다 망치를 쥐었고, 이왕이면 데크도 만들자 싶었다.

현희는 별 말이 없었지만, 그 조용한 미소가 나에게 또 다른 일을 부추겼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피할 곳이 없어, 나무로 차단막을 만들어냈다.

기능은 단순했지만, 그 아래 서면 마음이 맑아졌다.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다음 작업이 고개를 내밀었다.

별채 뒤뜰엔 또 하나의 가즈보가 생겼고, 집 앞뒤로 데크가 이어졌다.

앞마당 잔디엔 걷는 길을 분리해주었고, 본채와 별채 사이엔 작은 분수와 발지압 공간을 만들어

작은 물소리와 발끝의 자극이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는 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마무리는 늘 ‘재심의 가든’이었다.

그녀가 손길을 뻗은 땅은 늘 살아났다.

삭막하던 뒷마당에 꽃이 피고, 허브가 자라고,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곳은 여전히 풀잎 없는 흙바닥이었을 것이다.

목공을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나무를 대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다.

손으로 다듬고, 깎고, 조이고, 붙이는 그 과정은 마치 오래된 언어를 천천히 되새기는 일 같았다.

침대를 만들고, 의자를 만들고, 대문을 만들었다.

그렇게 내가 만든 것들로 채워진 이 마당과 집은, 누가 봐도 내 손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오늘 같은 날엔

그 기억들이 빗방울 타고 내려와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젖은 나무의 향기, 젖은 흙의 냄새, 그리고 가만히 그걸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어쩐지 따뜻하다.

비가 오면, 나는 정원을 마음에 다시 짓는다.

손 대신 마음으로.

망치 대신 추억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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