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나는 나야

그렇게 살아야지

by Surelee 이정곤


나는 나야.

이토록 단단하고 단순한 말이 또 있을까.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 같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닻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존이라는 삶의 뿌리를 일깨우는 말이다.
그 말을 내게 건넨 사람은 내가 호칭하는 노익짱 중의 한 사람, 원주에서 온 친구였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나를 찾아왔으며, 무엇보다 나를 격려하러 먼 길을 달려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 복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년에 처음 만났다.
영광군 농촌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녀는 대체의학 실천가로서, 마사지를 통해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회복을 도왔다.
세 달 동안 머물면서 참 많은 이들의 마음을 만졌고,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도 힘을 내곤했다.
그후 나는 종종 그녀가 건넸던 말들과, 그녀의 친절한 손길을 떠올렸다.
그런 그녀가 다시 내게 왔다.

'7777...'


77세가 되는 해의 7월 7일,
그날을 자신의 ‘사주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삶의 경계선 같은 그 하루를 무사히 넘겼으니, 이제부터 남은 생은 덤이라며 웃었다.
그 웃음엔 지나온 삶을 향한 겸허함과 남은 시간을 향한 다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두우리 갯벌에서 대사리를 채취한 뒤, 우리는 늦은 점심으로 내장국밥을 먹었다.
든든히 속을 채운 후,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바닷가 카페에 들렀다.
창문 너머로 밀물의 파고가 조용히 밀려들 무렵,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나야. 그렇게 살아.”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울림은 가슴에 남았다.
그녀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걸어온 시간, 그 속에 쌓였을 무게,
견뎌낸 수많은 밤과 다시 일어난 아침들.
그 모든 것이 이 짧은 문장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 말은 어떤 자기주장도, 자만도 아니었다.
살아온 날들을 꿋꿋이 지켜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자존의 고백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짭조름하다고 느꼈고, 마음속 무언가가 조용히 흔들렸다.
그녀는 어쩌면 내게 말해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나를 불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말을 자주 되뇌곤 한다.


나는 나야.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틀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된다는 건, 내가 살아낸 시간과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자존이란 그런 것이리라.
어떤 사람은, 단 한 마디 말로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킨다.
어떤 말은, 고요하게 마음에 뿌리내려 삶 전체의 빛깔을 바꾼다.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이 그랬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바다처럼 한없이 넓고 깊은 말,

"나는 나야."
그걸로 충분하다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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