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이직을 해?” “남자가 울기는 왜 울어.” “한 번 실패한 사람은 또 실패해.”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너무 익숙하기에, 이 말들이 틀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처럼 ‘통념’은 삶의 이면에 깔린 흐름 없는 규칙이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듯한 사회적 계약이다. 문제는 이 통념이 실제로는 많은 마음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희는 중년의 나이에 아픔의 흔적을 씻어 내려는 듯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지지보다 우려의 말이 쏟아졌다. “그 나이에 이제 뭘 시작하겠다고?” “너도 평범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그녀는 이 ‘평범’이라는 말이 곧 통념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조용히 넘겼던 말들이 점점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상담했던 한 여성이 흐느끼며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녀는 진짜 삶은, 통념이란 규정하는 틀 속이 아니라 그 틀을 넘어선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재심은 병원의 보험 심사팀장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난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노모의 요양병원 입소를 두고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요청했다. 재심은 처음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자식 된 도리니까, 당연히 최선을 다하셨겠죠.” 그러자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전 사실… 간병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재심은 ‘자식이면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통념이 이 남성을 얼마나 죄책감으로 몰아넣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뒤로 재심은 자신의 상담 어조를 바꿨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해 오셨고, 그 마음을 저는 이해합니다.” 말 한마디가 벽이 될 수도, 다리가 될 수도 있음을 그날 깊이 실감했다. 정곤은 농촌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에서 영광군에 귀촌한 생활여행자다. 마을의 주민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처음엔 “몸 아픈 사람이 왜 태국을 자주 오가나” 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들의 말투는 따뜻했지만 그 안엔 의심과 거리감이 녹아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힘든 농사일 안 하잖아.” “귀촌생활에 혜택이 많은가?” 정곤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상처가 났다. 그러다 그는 초록이체험마을 행사지원과 유튜브로 영광 알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느 날 동네 이장이 말했다. “우리 마을에 귀촌하는 분들은 예술가들 같아.” 그때 정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진짜로 통하는 건, 통념을 따라가는 데 있지 않고, 그 틀을 부드럽게 흔드는 데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처럼 통념은 정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문을 막는 벽이다.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삶은 오히려 그 당연함에 갇히고 만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상처, 선택, 용기, 후회가 있고, 그것은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될 수 없다. ‘사람이 다 그렇지’라는 말은 편할 수는 있어도, 정직하진 않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그를 둘러싼 통념의 안경을 벗어야 한다. 통념을 넘는 순간, 마음은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그 흐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듣고, 다르게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때론, 막힘 없이, 틀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흐름이 진정한 ‘통’의 시작이다.
<시로 읽는 통념>
통념은 오래된 벽돌처럼 당연하단 이름으로 쌓여 있었다
나는 그 벽에 기대 살았고 때론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러나 누군가 조용히 질문을 던질 때 한 장의 벽돌이 빠져나가고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정답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작은 틈 하나에서 진짜 마음이 통(通)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