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나와 너, 우리를 잇는 다리(4)

통행과 통심, 너를 통해 나를 만나다

by Surelee 이정곤

통행(通行) — 너의 길을 걸으며 나를 만날 때


길은 각자의 것이지만, 때로 우리는 서로의 길을 건너가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통행은 타인의 길을 따라가보는 태도이자, 그 여정 속에서 나를 되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현희는 어느 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 걷기 행사’를 기획했다. 행사에 정곤도 영상제작 도우미로 참여했다. 현희는 그날, 참가자 중 한 여성이 울며 걷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길은 내 과거를 건너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저 여성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내 아픔을 위로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곤은 그날의 걷기를 ‘침묵의 길’이라 불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마음으로 울고 있었던 시간.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두가 말하고 있는 길”이라는 글과 함께 영상에 담았다.


재심도 환자의 죽음 이후, 유족들과 함께 병원 뒤편 작은 숲길을 걸은 적이 있다. 조용히 걷는 동안 유족은 “선생님도 고생하셨어요”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잡고 걸으며, 그녀는 자신이 환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의 삶도 일부 함께 걸어왔음을 느꼈다.

통행은 그저 함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시간, 상처, 흔들림 위를 조심스레 밟으며, 자기 존재를 다시 세우는 여정이다.


누군가의 길을 걸어본다는 건, 그의 삶을 향한 존중이자 내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다. 그가 겪어온 아픔과 눈물, 고요와 침묵의 길 위를 걷다 보면, 나의 상처도 어느 틈엔가 얼굴을 내민다.

통행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그 사람의 풍경 속을 지나며 내 안의 낯선 감정과 마주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이 길은 언제나 돌아오게 만든다. 너의 길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 안에 어떤 문을 열어주었는지, 천천히 깨닫게 하면서.

통행은 결국,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다.


통심(通心) — 마음을 모으는 기술


소통, 공존, 동행이 이루어질 때, 그 다음에는 서로의 마음이 모이는 ‘통심(通心)’의 시간이 찾아온다. 통심은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꼭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진심이 향하는 곳이 비슷할 때, 그 흐름은 연결된다.


현희는 위기 상담 후 자주 무력감을 느낀다. “그 사람의 인생을 내가 어떻게 바꿔줄 수 있을까?”라고. 하지만 재심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닿는 일이라고 봐. 그 한 조각만 모여도 그에겐 큰 물줄기가 될 수 있으니까.”


정곤은 '동네 어르신 기쁨 잔치'에서 행사기록을 위한 영상을 편집하던 중 한 할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나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 말은 정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그날 이후로 ‘글을 쓰는 마음이란, 누군가의 침묵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통심은 큰 감동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울림에서 시작된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 침묵을 함께 견디는 일, “괜찮아요”라는 말보다 “저도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 마음이 마음을 알아 차리는 데는 기술보다 공명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은 말보다 앞서 움직인다. 진심은 그저 말이 닿는다고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파장이 서로를 향할 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통심은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재주가 아니라, 조심스레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피어난다. 아무 말도 없이 곁을 지켜주는 일, 흘러나오는 한숨에 잠시 멈춰주는 일.

그런 작고 다정한 순간들이 쌓일 때, 마음은 비로소 열리고, 연결되고, 흐르기 시작한다. 마음이 오가는 길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의 자국으로 만들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