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인가, 작은 인사인가
이른 아침, 반쯤 감긴 눈으로 집안을 걷다가 끈끈한 거미줄에 나의 불쾌한 기분이 휘감겼다.
얼굴을 덮친 정체불명의 실타래.
눈에 보이지도 않던 실이 내 이마와 입술, 눈썹에까지 들러붙었다.
놀라고 짜증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불편해진 감정이다.
나는 머쓱해진 손동작으로 허공을 휘젓고 다닌다.
"하필 왜 얼굴에?"
하지만 어쩌면, 거미는 내가 바로 그 길로, 그 시간에, 하품하며 지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거미는 단순히 실을 내뿜는 존재가 아니다.
밤이면 거미줄을 치고, 아침이 되면 먹잇감이 없을 경우 조용히 그것을 걷어간다.
효율적이고 치밀한 생존 전략이다.
무턱대고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 햇살의 각도, 공간의 동선을 계산해 가장 알맞은 자리를 택한다.
다시 말해,
거미줄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노린’ 것이다.
나도 반응 없는 게시글을 SNS에서 삭제한 적이 있다.
거미도 반응 없는 줄은 철수한다.
이토록 민감하고, 이토록 전략적인 생명체 앞에
나는 무방비한 얼굴로 걸려든 것이다.
NASA가 우주에서 거미에게 했던 실험 결과가 흥미를 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거미줄이 엉망으로 엉켜버렸다고 한다.
심지어 카페인을 먹은 거미 역시 줄의 방향을 잃고 이상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환경’과 ‘내면의 평정’이 무너지면 거미도 중심을 잃는다는 증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버티고,
온종일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겨우 균형을 잡는 모습이 겹쳐졌다.
어쩌면 거미도 우리처럼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똑같은 길을 지나면서 조심스런 손짓으로 습관처럼 허공을 가른다.
혹시라도 또다시 거미줄에 걸릴까 봐서라기보단,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진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거미는 먹잇감의 위치를 진동으로 감지한다.
과학자들은 그 진동을 분석해 음악으로 바꾸기도 했다.
미세한 실 하나에 걸려흔들리는 떨림은 마치 나를 닮았다.
그것은 단순한 ‘덫’이 아니라, 거미가 세상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나의 마음도 사실은 그렇게 미세한 진동에 울린다.
작은 소리에 흔들리고, 눈에 안 보이는 결에 걸려 넘어지고.
거미줄에 얼굴을 포박당했던 그날 아침에 짜증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여전히 그 끈적 거리는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지금은 그래도 괜찮다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 내 존재를 예감하고 기다렸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르니까.
그 실오라기는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아주 작은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잘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