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머무는 집
살아보니,
집이란 단순히 벽과 지붕의 조합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기척, 두 사람의 숨결, 그리고 세 사람의 흔적 사이로,
시간이 흘러 새겨긴 사연이 벽지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현희와 정곤, 그리고 재심.
그들의 우정은 꽃처럼, 나무처럼, 지금처럼 이 집에서 그렇게 피어나고 있다
굳이 말보다 마음이 먼저 걷는 사람들.
정다운 동반보다 친밀한 동행의 길을 함께 걷자고 했을 땐, 누구도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조용한 지붕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은 두 채다.
본채에는 현희, 별채에는 정곤이 산다.
그 사이로는 바람이 분다.
계절마다 다른 결을 지닌 바람이다.
봄에는 가볍고, 여름에는 맑고,
가을엔 부드럽고, 겨울엔 맨살에 스미는 기척처럼 움츠러든다.
그 바람의 길목에 분수대가 있다.
작은 웅덩이에서 비롯된 고요한 흐름이 먼 길을 돌고돌아 순환하지만, 그곳엔 개구리들의 생명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그 옆에, 발지압 작은 공간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고요한 숨결처럼 이어지는 데크길이 나온다.
데크 위를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나란히 앉게 되고,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마치 수십 년 동안 숙성된 이야기처럼 더 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본채는 낮은 숨처럼 깊다.
이 집에는 오래된 나무의 향이 벽과 기둥마다 배어 있다.
데크에 편히 누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주말마다 찾아오는 재심의 웃음이 담장을 넘어갈 때도 있다. 이 집에서 가장 가벼운 바람보다 유쾌한 웃음이다.
별채는 투박한 그릇처럼 숨이 거칠다.
정곤의 묵직한 발길이 집 안에 따뜻한 기척을 남긴다. 별채는 바깥세상과 한 발짝 더 떨어져 있다.
이따금씩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그 숨은 이 집 어디에선가 바람이 되어 다시 흐른다.
별채 뒤뜰엔 가즈보가 있고,
그 아래 벤치에는 늘 아침햇살이 가장 먼저 도착한다.
정원은 피고 지는 꽃의 시간으로 계절을 알려주고,
그곳엔 ‘재심 정원’이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을 얻지 못했다.
아침마다 마음속 커튼을 걷으면 햇살이 먼저 다정히 인사한다.
그 햇살이 벤치에 머물다 나뭇잎 끝으로 스며들면,
한 세월 동안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음을 문득 알아차리게 된다.
이 집에 피어오른 세사람의 우정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늙어가는 삶’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익어가는 이야기들이 되어, 더 단단하고 정갈한 사람이 되어가도록 응원할 뿐이다.
가끔은 두 개의 현관을 오가며, 마치 서로 다른 시간대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사이 놓인 분수는
흐름과 흐름 사이를 잇는 다리 같고,
바람은 그 다리를 건너며 말 대신 마음을 전한다.
"오늘은 좀 웃었니?"
"괜찮아, 그건 흘려보내도 되는 일이야."
이처럼 삼총사의 인정을 엮어서 시를 쓴다면 이집은 그렇게 말이 없는 위로들로 가득한 시집이 될것이다.
서로를 채우기보다는, 비워두고 기다려주는 시간들.
애써 닮아가려 하지 않아도 닮아가는 숨결.
이 집의 이름을 정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기뻐지는 집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숨 쉬듯 편안한 곳이었으면 좋겠어.”
그 바람대로, 우리는 오늘도 이 두 채 사이에서 바람을 건너고 있다.
꽃을 심고, 음식를 나누고, 차를 우려내고, 지루해지면 오래된 이야기 하나쯤을 허공에 띄운다.
그리하여 이 집은,
더 이상 나와 너의 집이 아니라
우리의 숨결이 머무는 집이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