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야 산다
<알림>
제6장에 이어지는 연작 횟수가 브런치북 규정을 초과해서 나머지 6개의 연화를 생략하게 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아래와 같이 6장의 첫번째 이야기와 에필로그로 연작을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멈춰 있던 감정과 관계, 흐름을 다시 깨우는 용기.
흐름이 멈추면 생명은 고요해지지 않고 병든다. 물이 고이면 썩듯, 우리의 마음도, 관계도, 삶의 에너지마저도 멈춤 속에서는 닫히고 굳는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 숨 쉬는 공기, 계절을 타고 도는 바람, 피가 도는 혈관, 그리고 감정도 생각도 결국은 흘러야 제자리를 찾는다.
정곤은 오랜 침묵 속에 있었다. 퇴직 후 글을 써보겠다며 마을로 내려왔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펜이 공중에 머물다 굳어버리곤 했다. 한때 그는 열정적인 작가였고, 글을 쓰는 일이 자기 존재의 통로라고 믿었다. 그러나 번아웃, 자기 회의,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실감은 그의 마음속 길을 틀어막았다.
그가 글쓰기 모임에 처음 나온 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말미에 조용히 읊은 한 문장은 모두의 가슴에 깊은 물결을 남겼다.
“글이 써지지 않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서 무서웠습니다.”
모임의 일원으로 꾸준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 쓰려고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적었다. 내면의 두려움, 부끄러움, 침묵조차 글감이 되었다. 그렇게 단어들이 다시 흘렀고, 멈췄던 마음의 물줄기가 미세하게나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흘러야 산다.
살아 있다는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흐름은 거창한 목표나 성취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아니다. 때로는 눈물 한 방울이, 누군가에게 쓴 짧은 메모 한 줄이, 오래 묵힌 방에서 문을 여는 일 하나가 다시 흐름을 여는 시작이 된다.
살아 있는 우리는 정지된 존재가 아니다. 흘러야 하고, 흘러가야 한다. 다시 살아가고자 한다면, 작은 흐름부터 되살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말 한 마디, 걸음 하나, 손끝으로 적은 문장 하나가 다시 나를 흐르게 한다.
정곤은 지금, 여전히 완벽한 글은 못 쓰지만 매일 조금씩 쓴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글로 살아 있는 느낌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게 흐른다는 거더군요.”
흘러야 산다. 생(生)은 그렇게 다시 이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