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작가의 스무 번째 편지
폭염이에요. 벌써. 어떻게 이렇게 금세 더워졌는지 기후 위기가 무섭기도 합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전 이 말이 참 좋아요. 예술은 삶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간답게 사는데 예술이 필요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일 수 없는 걸요. 인간이 죽으면 무엇이 될까요? 죽은 상태의 인간은 무엇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죽은 후의 인간은 인간일까요? 살아있는 상태의 인간이 인간이라면, 의식주는 너무나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배고파 죽겠는데 뭉크의 ‘마돈나’가 무슨 소용이고, 추워 죽겠는데 모차르트가 들리겠어요.
세상은 사실 먹고사는 문제가 다 해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예요. 나누지 않을 뿐, 더 이상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음식물 쓰레기는 넘쳐나고 배부른 사람들은 비만이 주요 질병이고 다이어트 산업이 성행하는데,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참 슬픈 현실이죠. 우리는 왜 더 나누지 않을까요?
이젠 먹고사는 고민이 아니라 삶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예술을 나누어야 하는데, 여전히 먹고사는 게 나누어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어요, 우린.
평이 극으로 갈리는 연극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서울국립극단의 <연안지대>라는 레바논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국내 초연 작품이에요. 어젠 박재홍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울었어요. 피아노를 6년 꼬박 배운 저에게도 외계어인 Scriabin의 작품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와 동기였대요. 박재홍이 그러더라고요. ‘다들 잘 모르시는데...’ 그 말이 자격지심 들려던 마음을 숨기게 해 줬어요. 스크랴빈도 독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는데, 듣는 내내 ‘지금의 세상’이 그려졌어요. 근데 막상 눈물 나고 말았던 건, 라흐마니노프의 ‘네 손을 위한 6개의 소품이었어요.
아버지를 애도하러 영월에 처음 갔었다고 했죠. 영월역 맞은편 ’진달래장의사‘ 간판에 이끌려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히 아버지를 애도하고 싶었다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영월은 너무 북적여서 아버지를 애도하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어제 예술가의 집 라운지에서 약 쉰 명의 예술나무회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 후원회 호칭)들 사이에서 박재홍과 정지원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는데 그 연주 자체가 ’애도‘같았어요. 몸과 정신에 잔뜩 힘을 주고 어떤 ’형식‘으로 온전한 ’시간‘으로 애도하려고 했을 때는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몰랐었는데, 연주가 오르락내리락, 저리로 이리로 휘몰아치고 달래는 동안 수많은 음과 함께 드디어 애도한단 느낌에 그만 마지막 부분에선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편지에 나무님이 쓰셨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평소에 몸과 정신에 힘 빼는 게 잘 안 돼요, 전. 장애인 동생과 오래 함께 살아서일까요? 사랑이나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로 인해 눈치 보는 게 익숙해요. 예전엔 장애인 동생 때문만이라고 했다면, 이젠 제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고 인정할 만큼 자랐어요. 아무튼 힘을 빼고 자연스러워야 나무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혼을 살리는 예술가가 될 텐데 힘이 왜 이렇게 안 빠질까요?
어쩌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연주에 빠져 힘을 뺀 게 애도할 수 있던 길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사람들이 있든 없든 자연스럽게 저를 놓을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게 참 어려워요. 그렇다고 나무님처럼 명상을 즐겨하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도 않고요. 어쩌면 고요한 가운데 저의 시끄러운 마음이 들킬까봐 걱정되나 봐요.
슬프게도 전 제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해요. 수많은 자기개발서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고, 요즘엔 다들 적당한 이기주의, 높은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 멋진 것으로 보이는 세상인 것 같은데 전 그렇지가 못해요. 그렇다고 세상을 부러워하며 나만 빼고 세상은 아름다워! 이렇지도 않아요. 저란 인간, 대체 뭐죠. 이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나요?
아주 선명하게 저도 아름답고 세상도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어요. 수원역이었고, 기차를 놓친 상황이었죠. 스물여섯의 저는 엄청난 결심을 했었답니다. 세상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기쁘게 사랑하며 살겠다고요. 수도원에 들어가는 대신 수도원에 발을 걸친 평신도처럼 살면서 세상을 사랑할 생각에 들떠서 기차를 놓쳤는데도, 콧노래가 나오고 세상이 선명하게 아름다워보였어요. 찌푸린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거들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기차의 소음이 사람 사는 소리 같고, 그냥 그 모든 게 세상의 조화로움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너무 생생해서 다시는 그 순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오지 않는 것 같아요. 늘 다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전처럼 강렬하고 확신에 차진 못하는 것 같아요. 왜인지 몰랐는데, 엊그제 월정사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 것 같아요. 출장처럼 평창에 다녀올 일이 있었고, 프로그램 중 산에 올라가 요가하고 월정사 박물관에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산에 오르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바람에 엇갈려 혼자 일찍 내려오게 되었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혼자 월정사에 갔어요.
큰 법당 앞에 서서 불상을 바라보는데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속내를 보였어요.
‘나 가톨릭 신잔데, 냉담해, 상관없어. 까르르르르.’ 하고 향을 피웠어요.
조금 이따 ‘나 교회 다녔잖아.’ 하더니, ‘왜 불상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거야?’하고는 까르르 웃는 아주머니들이 지나갔어요.
‘어머머, 저거 금박으로 두른 거야?’, ‘이 향 돈 내는 거야?’, ‘몰라. 그냥 피워.’, ‘라이터 있어?’, ‘그 옆에 초로 붙여.’, ‘저기 종 봐, 존나 예쁘지?’, ‘저거 치는 거야?’, ‘몰라.’, ‘향 냄새 별로다.’.... 수많은 말이 향보다 먼저 하늘로 오릅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동안 불상 앞에 말이 쌓이고 쌓입니다.
‘뭐라고 빌었어?’,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했지.’, ‘넌?’,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했지.’, ‘뭐 빌었는데?’, ‘우리 손자 좋은 대학 가게 해 주시고 건강하게 잘 크고, 나도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했지.’, ‘아이고, 욕심도 많다.’ 또 까르르. 저 많은 소원은 어디로 갈까요?
부처님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기를 비우고 자비를 베푸는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게 아니었습니까? 사람들이 웃음으로 욕심이 아닌 척 욕심을 비는 동안 부처님은 말없이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마음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출가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십대. 수도원에 갈까? 환희에 들떴던 그 마음처럼 출가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땐 외적 이유로 못 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압니다. 주어진 대로 굳건한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사랑하며, 정진해서 살면 저는 아마 성실하게 잘 살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큰 스님들처럼 밖에 빛을 비추거나, 테레사 수녀님처럼 세상에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할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주 잘 살아낼 뿐, 도전하고, 깨지고, 눈치 보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다시 시작하는 이 처절한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져 제가 무슨 꽤나 득도한 스님이나 성인 수도자가 된 듯 교만에 빠져 살 인간입니다. 제가 그렇게 될까봐 신이 ‘세상’ 속에 살라고 못 가게 말리신 것 같습니다.
마침 월정사이기도 하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너무 와닿는 날이었습니다. 스물여섯 선명하던 그날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 있는 곳이 절이 될 수도, 수도원이 될 수도, 단테의 지옥편이 될 수도, 데미안의 ‘알’ 속이 될 수도 있는데, 그 ‘마음’이란 것이 참 요상해서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절 사랑하지도, 세상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제 마음을 좀 고쳐 먹어보아야겠습니다. 나무님은 ‘마음’이 제일 말을 안 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240626.18시 51분 영월에서 선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