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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22. 2024

마음은 원래 안 먹어져

나무의 스물한 번째 편지

지난번 편지 쓰실 때 영월이 폭염이라고 하셨죠? 지금 대전은 폭우입니다. 그 며칠 새 날씨가 바뀌어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어느새 여름의 중앙으로 들어왔어요. 오늘은 7월 2일. 오늘 아침에 청소하면서 혼자 생각했어요. ‘7월이 오고야 말았구나!’ 


마음이 약간 탄식을 하면서 아쉬워했어요. 벌써 7월, 본격적인 여름이라니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간이 야속하게 빠르다고 하는 그런 아쉬움은 아니고요. (그런 아쉬움은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네요. ‘뭐 인생이 원래 그런 걸 어쩌겠어.’하고 마는 거죠.) 어떤 아쉬움인가 하면, 여름이 곧 지나갈 것을 아쉬워하는 아쉬움이랍니다. 웃기지요? 이제 막 시작됐는데 끝을 염두에 두고 아쉬워하고 있다니. 


언제부턴가 그랬던 거 같아요. 여름 즈음이 되면 낮도 길고 빛도 많은 하루가 내 안에 열정을 일깨우는 느낌이었어요. 어두컴컴한 것보다 빛이 있으면 기분이 더 좋잖아요? 빛이 잔뜩 있는 날들. 그래서 괜히 희망이 느껴지는 날들. 몸에 활기가 돌고 뭐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들. 눈부신 햇살처럼 반짝이는 나의 젊음 같은 날들. 땀이 나서 시원하게 샤워하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날들. 여름이란 게 그런 식으로 머릿속 개념으로 잡힌 거 같아요. 마음에 맞는 좋은 시기는 짧게 느껴지잖아요. 이 여름이 아주 짧게 스쳐지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 아쉬운 거지요. 삶의 의욕이 솟아나는 시기가 금세 지나가가겠지, 하면서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며 당장의 더위보다도 곧 지나갈 더위를 벌써 그리워하고 있어요. 이 더위 금세 끝나고 곧 춥다고 할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요. 저는 손발이 차서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더 힘들거든요. 그게 싫어서 겨울의 추위를 떠올리면 ‘차라리 여름!’이라고 이 더위에 한 표를 던집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여름은 한 마디로 해서 청춘의 예술 같은 날들이에요. 나의 예술이란 ‘여름이다.’라고 해도 되겠네요.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빛을 뿜어내는 여름 같은 삶. 내 안에 그 강렬한 빛이 있다면 정말 예술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잘 모르지만 선물님이 얘기한 박재홍 피아니스트의 연주에도 그런 생명력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해요. 상상해보았어요.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아마 선물님의 감정선을 터치하며 내면에 어딘가 막혀 있던 생명의 강물이 시원하게 터져 흐르도록 했을 거라고. 한의사가 맥을 짚고 알 수 없는 이곳저곳에 침을 놓듯이 피아노 연주의 수많은 음이 선물님의 마음의 혈자리를 터치하고 지나갔을 거라고, 터질 듯 터지지 않던 슬픔과 눈물이 아낌없이 흐를 수 있게 해주었을 거라고요. 애도하지 못했던 애도를 하고 난 지금은 어떤가요? 조금 더 생의 감각이 분명해졌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살아있는 감각을 명징하게 하기, 그 또한 예술가가 할 일이고 그런 삶이 예술가의 삶이겠지요. 이번에 애도를 하며 선물님이 본인이 원하던 예술에 좀 더 가까워지리라 기대가 되네요. 몸에도 마음에도 힘을 빼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끼는 예술. 말만 해도 향긋하지 않나요? 사실 우리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아름다운 존재인 거지요. 어떤 존재가 될 필요도 없이 지금의 나인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거 말이에요.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요. 그냥 나이면 되고 그냥 이대로 완전히 아름답다니. 말하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렇게 글을 적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어 잠시 고백하고 지나갑니다. 만일 선물님이 보기에 제가 힘 빼고 편안하고 수월하게 명상을 즐기며 산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늘 시끄러운 원숭이 같은 정신과 살고 있느라 저 역시 몸과 마음에 힘이 자주 들어가 있어요. 명상을 즐기는 수준이라기보다는 명상이라도 해서 멘탈을 유지하고 있는 거고, 하루에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시간이 매우 짧으니 이렇게 예술과 아름다움 운운하며 글을 적는 동안에 아름다움을 물씬 느끼며 혼자 감동받는 거랍니다. 그러니 선물님 낙담하지 말아요. 우리가 빛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빛을 밝히는 어둠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물님과 제가 어둠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어찌 빛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어두움이 없으면 그와 대별되는 빛도 인식할 수 없을 텐데. 


마음은 원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마음대로 된다면 마음속을 온통 밝은 빛으로만 채우겠지요. 제 경우에는 늘 여름처럼 살겠지요. 그게 안 되니까 예술도 하고 명상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마음이 제일 말을 안 들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뜸 ‘지금도 안 되는데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하고 싶네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오히려 마음이 말을 들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민이 오래됐을 거예요. 당최 마음이 말을 듣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영성 서적과 심리학책을 오래 뒤적이고 이런저런 수련을 하며 얻은 소득이 있다면 ‘마음은 원래 그런 놈이다.’라는 거예요. 뇌과학에서도 말하지요. 인간의 정신은 원래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당신이 평상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면 정상이라고. 할렐루야! 이거야말로 복음 아닌가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정상입니다! 인류사의 오랜 경전에서부터 최신 뇌과학이 똑같이 말하고 있으니 믿으세요. 다 같이 외쳐 봅시다. 이상한 것 같아도 이게 정상이다! 


이는 제 마음이 들쭉날쭉한 것에 대한 항변이 아님을 거듭 말씀드려요. 저는 언제부턴가 이 믿음을 따라 살고 있어요. 물론 잘 되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뜯어고치려는 짓을 줄여나가고 있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좀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해도 좀 더 선한 인간이 되려고 해도 마음은 조금 되는가 싶으면 이내 튕겨나가더라고요.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이 먹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안 먹어지는 걸 자꾸 먹으라고 하면 어떡해요. 먹을 수 없는 걸 먹으면 배탈 나요. 


월정사에 다녀오셨다고요? 저는 월정사 아래에 있는 옴뷔라는 명상센터에서 몇 번 명상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어요. 그곳은 탁 트인 하늘과 공간을 넉넉히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어우러져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지요. 지난겨울에도 오륙 일 동안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소감 나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들 명상이 어떻게 좋았고, 나가면 명상의 기운을 받아 잘 살아보겠다, 가르침대로 나누며 살겠다는 등등 소감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면에서 불쑥 솔직한 마음이 올라왔어요. ‘제발 이제 그만.’ 저도 이런 명상, 저런 집단상담 등 수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좀 더 착하게 나누고 살겠다는 말을 내뱉었거든요. 그런데 정녕 그렇게 살았는지 돌아보면 그렇지 않더라고요. 괜히 마음에 힘을 더 주고 선한 척 살려다가 내면의 모순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더 괴로워지고 결국 스스로 나자빠지기를 반복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소감 나눔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이제 그만 나누자고 약속하려고요. 지난 날 프로그램 끝날 때마다 그런 약속을 했는데 오랫동안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저에게 말해요. 그냥 살자.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좀 살자!’ 

그냥 좀 살고자 요새 제 속을 자주 들여다보는데, 마음이 자꾸 치장하고 미화하려는 게 문득문득 보여요. 평범한 인간이 안 되려고 마음은 시시각각 음모를 꾸며요. 어떻게 하면 좀 잘 보일까 부단히 애를 쓰지요. 그렇게 사십 여 년을 살아왔다니 이 사람도 참. 이제 그만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그게 아마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아닐까 해요. 마음이 가장 말을 안 들었던 때를 한순간으로 뽑기는 어렵지만 어떤 상태였는지는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럴 때는 마음이 제 말을 안 들은 게 아니고 제가 마음에게 억지 부릴 때였어요. 그러니 마음이 말을 안 들을 수밖에요. 


요즘 사색을 할 때 제 안에 연약함을 음미해보려고 해요. 늘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도통 밖으로 선뜻 드러나지 않는, 나도 아주 천천히 슬그머니 다가가야 보여주는 마음의 속살, 연약함. 그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을 숨기고 있더라고요. 내면 깊이 접촉할 때 깨달았어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연약하구나. 그 연약한 부드러움을 감지할 때면 나 자신에게 미안해져요. 얼마나 나를 닦달하고 사는 것인지 얼마나 되도 않게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 이제는 내 안에 보드라운 연약함을 인정하고 살려고 해요. 아름다워지려 애쓰지 않으면 오히려 아름답나니. 착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려 마음을 주물럭대던 걸 좀 그만하려고요. 먹을 수도 없고 먹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그냥 두렵니다. 제 갈 길 가도록 내버려두려고요. 선물님이 ‘마음먹기’라는 주제를 던져준 덕분에 이 편지를 쓰며 더 솔직하게 내 속을 들여다보고 꺼낼 수 있었네요.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고들 말하지요.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제 소원은 밥 먹으면 똥 쌀 줄 아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선물님에게 평범함, 평범하게 사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요? 혹시 내 안의 아주 평범한 구석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때도 있나요? 


2024.0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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