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른들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일주일에 고작 하루를 쉬면서...(뭐 지금은 이틀이지만...)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매일매일 일하는, 그런 놀지 못하는 환경과 삶이 막연하게 두려웠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기 싫다...'
그리고 그때 이런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내가 먼 훗날 어른이 되면, 내가 어른이 되기 싫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기억 못 하겠지?'
기억했다. (너의 1패다 어린이여!!)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내가 어린아이때 했던 재미있었던 놀이들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로 구성된 삶, 즉 어른들은 어른들의 낙이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살고 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재산도 모으고, 사고 싶은 것 사고... (그냥 이런 것들이 낙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아이 때 보다 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할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낙은 무엇인가?
나는 사춘기가 20대 때 왔다. 20대는 내 인생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시기였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항상 피하려고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살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시기였다. 그저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갖가지 유흥들을 이것저것 하며 살았고, 그렇게 젊음이 낭비되는 것도 알면서도 애써 현실을 피했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충분히 되고 남을 사건들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겪고도 정신을 조금도 차리지 못했었다. 그때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다. 노는 게 제일 좋았고...(뭐... 뽀로로가 목표는 아니었다.) 사실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는 조금도 가늠조차 안 되었다. 취직 및 사회생활, 결혼 및 2세 계획, 내 꿈, 내 희망, 내 앞날... 그 어떤 것도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그때는 그냥 이런 생각까지도 했었다. 내가 아무리 지금 대충 살아도, 나중에 뭐라도 되겠지... 직장도 못 구하고 내가 아무것도 안 된다면 '동네에서 폐지나 주워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동네 노인들과 경쟁하면 해볼 만할 것 같으니, 일단 리어카를 사고, 누구보다도 새벽에 길거리로 출동해서, 동네 노인들(ex: 김노인, 정노인 등등) 보다 더 빠르게 폐지를 수거하면 내가 폐지업계의 일인자가 될 수 있겠다. 나는 젊고 빠르니까 말이다. 음... 당신이 지금 생각한 것 맞다.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행이나 바라는 마인드면 김노인, 정노인한테도 분명 졌을 것이다.) 그렇게 20대의 중요한 시간들을 허비하면서 허송세월을 잘도 보냈다. 이 때는 일을 시작하면 평생을 일만 해야 한다는 것에 불안감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잘 살 생각은 내 주제에 못하겠고, '남들처럼 만큼은 살아보자'라고... 그리고는 어설프게나마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냥 불현듯, 내가 노는 것만 신경 쓰면서 살다가는 정작 어른의 삶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 불안감에는 20대를 허비했다는 죄책감도 많이 담겨있었다. 20대 후반에 뒤늦게 공부도 열심히 했고, 거기에 운도 일부 작용하여, 결국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 취직 자체를 감사히 여겼었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또 공부했다. 취직 후 더디다고만 생각하던 사회 초년생의 시기를 넘어, 연차가 진행됨에 따라 연봉인상도 승진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그냥 열심히 살았고, 그냥 달렸다. 그러나 노는 것을 찾거나, 내 낙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들을 많이 허비했고, 내 인생을 즐기는 것, 즉 '낙'이라는 것 따위는 내가 모든것들을 다 노력하고 이룬 후에 자동으로 나에게 따라오게 되는 전리품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결국, 나의 뽀로로 같았던 20대를 지나고, 30대를 열심히 달리고, 40대를 앞두고 내가 사회 초년생 때 목표로 했던 것들에 드디어 도달했다. 30대에 나의 목표가 몇 가지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던 영향인지, 거의 재력과 재물에 관련이 있다. 내 집마련, 억대연봉, 고급외제차 따위 들이었고, 운 좋게도 30대의 막바지에 거의 다 이뤄냈다.
그런데 목표를 두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리고 그 목표들을 잘 이루었는데...
내 인생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만족되는 인생은 아니다.
다시 힘을 내기 위해서 40대가 되어서 50살까지의 목표도 설정했는데도, 무언가 공허하기만 하고, 이제는 그런 것들도 삶에서 감흥이 되지 못한다.
내 인생의 낙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 건지?
가만히 나의 낙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친구들과 좋은 술을 먹는 것이 나의 낙인가?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나의 낙인가? 친구를 만나서 카페에 가서 수다 떠는 것이 나의 낙인가? 운동하고 골프 치고, 쇼핑하고 돈 쓰는 것이 나의 낙인가? 그런 것들이 낙이라면 그런 것들을 종종 하면서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데, 사실 친구들은 다들 바빠서(다들 늦게 결혼을 해서 그런지 미취학 아동을 육아 중인 경우가 태반이다.) 만날 시간도 많지 않고, 쇼핑하면서 좋은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들은 그 자체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안 하게 된다. 골프를 치는 것은 비즈니스 용도로 많이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취미가 붙지는 않는다. 맛있는 음식도 몇 번 먹으면 그냥 그런 음식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낙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정리해 보면 내 삶의 낙이라고 확실하게 정할 만한 것들이 생각보다 없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 만물들을 보는 것이 그냥 마냥 좋고, 모든 것들이 다 나의 낙이었었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그것들을 보는 것, 밤에 달과 별을 보면서 무한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하는 것, 나비와 잠자리를 찾아 온 동네를 누비고, 친구, 형제들과 그것들을 가지고 놀았던 것, 흙으로 손 장난하고 흙공을 만들어 동급생들과 겨루는 것, 나를 보고 표정을 바꿔가며 장난치는 어른들을 마주치게 되면 나도 같이 장난치는 것, 누군가 내가 아는 길을 물어보면 어른스럽게 대답하고 뿌듯했던 것 등등... 사실, 나와 부딪치는 모든 세상이 좋았다. 그리고 특히 토요일 저녁이 되면, 내일 아침에 '디즈니 만화동산' 한다는 것만으로도 밤중에 계속 설레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새롭고 매일매일이 좋았었다. 그때는 소소했던 모든 게 다 나의 낙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낙은 무엇인가?
뭐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에 나를 설레게 했던 소소한 기억들과도 같이, 내가 현재 소소하게 행복했던 것들이 떠올려보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사랑하는 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무례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말을 건네는 것
내 태도로 상대방의 무례함이 사라지는 것이 좋았다.
식당에서 음식이 맛있었으면 무조건 맛있었다고 말하는 것.
음식점 종사자분들이 갑자기 우쭐해하며 기분 좋아진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버스에 타면 내릴 때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
버스 기사님이 어리둥절해하다가 인사를 받는 모습이 좋았다.
어쩌다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여 대리기사님을 부를 때 무조건 경어를 쓰고, 가실 때 90도 인사를 하는 것.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았다.
지나가다 또는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를 만나면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장난을 치는 것.
내가 어릴 때 같은 장난을 해주는 어른들이 떠올랐고, 그때 어떨 땐 기분이 많이 좋았었다.
회사에서 주변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든 아니든, 무조건 퇴사하고도 나에게 연락이 다시 온다.
그리고 남을 위한 베푸는 행동들을 하고 사는 것
살면서 내가 기억하는 사람보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다. 그게 좋았다.
부끄러워하는 어머니 볼 때마다 껴안아드리기
나도 좋고, 무뚝뚝한 어머니도 내심 좋아하시더라 ㅎ
혼자 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보고 게임하고, 좀 야한 게시물도 좀 보고
소소한 취미생활은 스트레스가 풀린다.
가족들을 위해 아침에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것
가족들이 맛있다고 할 때 보상받는 느낌
백종원 레시피를 보고 설탕 덜 넣고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내가 요리 연구가라도 된 느낌에 우쭐해진다.
그리고 글 쓰는 것, 누군가 내 글을 진득하니 읽고 진득하니 반응해 주는 것
최근 들어서 이런 것도 좋다.
처음에는 '내 낙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무슨 일을 해야 행복한가?', '나는 남을 위해서만 수동적으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항상 행복할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렸지만, 글을 쓰다 보니 '낙'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만 보고 접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낙'은 커다랗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고, 소소한 행복들로만 이뤄진다 하여도...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낙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소소하게 행복했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글로 써 내려가면서 나는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소한 행복, 그 소소한 것들이 내게 슬며시 속삭이는듯하다.
"나야~ 네 낙"
40대가 된 나에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어른의 '디즈니 만화동산'이라고 생각이 드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