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 적에는 단칸방에서 우리 가족 네 식구가 연탄불을 떼고 살았었다. 네 명이 나란히 누워서 TV도 보고 한 이불을 덮고 잠도 자고 했다. 나는 그 시절 그런 게 참 좋았다. 한 이불 안에서 누워서 같은 TV를 보고 같은 시간에 다 같이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름 유년기의 낭만으로 느껴지니까 말이다. 한 번은 그렇게 단칸방에서 네 명이 똑같이 누워서 자다가 연탄가스를 동시에 흡입하고 모두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알아차리고 모두 밖으로 빠르게 대피해서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살아났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 기억이 없어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으니 그것 또한 우리 가족이 하나가 되어 파란만장한 세월을 이겨낸 장엄한 무언가 같은... 뭐 그런 걸로 기억이 되어있다. 그렇게 네 명의 식구가 한방의 한쪽벽부터 다른 쪽 옷장아래까지 주르륵 누워있는 풍경은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우리 부모님도 여느 가정집처럼 가끔 부부싸움을 하셨다. 아버지가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무서운 아버지의 그날 기분에 따라 가족들이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간혹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시는 날은 나도 눈치가 보여서 단칸방에서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가시방석 같을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시고 난 후의 썰렁한 집안분위기가 속상해서, 왜 다툼이 생기는지 어떻게든 이해해 보고, 내가 분쟁을 해결해 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내 마음속에서는 '우리 안 싸우고 행복만 하면 안 되나요?' 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결국엔 내가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대화는 제대로 이해도 못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많이 없었다. 내가 보유한 장난감은, 무슨무슨 날에 부모님을 졸라서 샀던 천오백원짜리 싸구려 조립식 비행기 모형(무스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밤마다 내 머리맡에 두고 잤던 토끼 인형, 그리고 TV가 전부였다. 그중 더러럭 소리가 나면서 채널을 돌렸던 아날로그식 TV는 온 가족의 유흥을 도맡는 중책을 맡았던 우리 가족 보물 1호였다. 오래되어 화면에 노이즈가 있고, 잡음까지 있는 상태로 시청을 했었는데, 그때 그 TV하나를 두고 가족들과 다 함께 이불 안에서 누워서 시청했던 기억이 내게 아련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담으로 SBS서울방송이라는 방송국이 개국했을 당시, 우리 집의 보물 1호인 TV에서는 그 채널이 나오지가 않았다. 그 서울방송이라는 채널이 우리집 TV에서 나오지 않아서 그때 내가 몹시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식구가 서울에 살면서 서울방송을 못 봤던 이유는 그 당시 서울방송은 주파수가 기존 공중파 채널과는 달라서, 시청하기 위해서는 로우밴드 안테나라는 것을 새롭게 달아야 시청이 가능했기 때문이었고, 기존의 공중파 채널도 선명하지 않게 시청하던 우리집 TV에서 SBS를 시청하는 것은 감히라는 말로도 부족한 언감생심이었다.(나는 친구네 집이나 친척집에 가야 겨우 SBS라는 것의 실제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쉽게도 SBS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머지 MBC, KBS1, KBS2의 삼 형제가 있었기에 TV시청은 사실상 어린 나에게는 모자람이 없었다. SBS가 없었어도 밤 10시에서 11시 사이 즈음이 되면 가족 네 명이서 이불을 덥고 누워서 삼 형제가 나오는 TV를 시청하다가 드라마도 보고, 주말에는 토요명화, 주말의 영화도 보고, 평일 밤에는 11시 심야 쇼프로그램도 종종 봤었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 TV시청에 관한 독점권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머리가 좀 커졌다고, 아버지의 채널 독점권에 맞서서 원하는 방송을 보기 위해 누나와 연대하여 투쟁도 했던 기억이 있다. 손지창 장동건 주연의 '마지막 승부'를 보기 위해 이덕화 주연의 '한명회'를 본다는 아버지와 다퉜지만 끝내 누나와 나의 연대가 아버지에 못 이기고 지고 말았다. 그때 많이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이때 내 친구가 마지막 승부 녹화 테이프를 빌려준다고도 했었지만 우리 집에는 VTR이 없어서 더 속상했다.)
그런 우리 가족들이 가끔 이견없이 다 함께 시청하는 방송이 있었는데 바로 다큐멘터리였다. 아버지가 다큐멘터리를 특히 좋아하셔서 시청할 때는 몰입을 많이 하셨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세상에 저런 세계가 있구나',
'저 동물 좀 봐~',
'와 저 미개한 사람들 좀 봐~'
등등의 추임새를 넣으셨었고, 가끔은 소리 내어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그 순간은 무서운 아버지가 마치 순한 양처럼, 아이처럼 보이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의 느낌을 말로 설명하자면 마치 세계평화가 좀 전에 이뤄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그래서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실 때에, 나는 세계평화를 가져올 다큐멘터리가 저녁에 방송하기만을 기도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큐멘터리 따위를 보면서 아버지의 감정을 전달하는 그러한 말들, 추임새들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내 주변사람들이 행복해하거나 감동하거나 할 때, 그 감정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자라나면서 주변에 누구라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 느낌에 쉽게 동화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내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굴거나 살갑게 대하면, 그 친구들이 나를 더 친근하게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들이 나에게 애정을 표하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들이 나에게 원하던 것들을 내가 했을 때, 그들이 좋아하거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고, 연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나 선물을 했을 때의 연인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을 보는 것도 나의 행복이 되었다. 사실은 그것들이 실제 나의 행복이 아닐 때가 많았는데도,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하나가 된 것 마냥, 내 마음도 연결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남들의 행복을 듣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가져오기 위해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되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잘 대해주고 그들의 행복을 듣고 내 마음으로 가져오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각지 못한 행복을 선물하고 그 들뜬 마음을 듣고 내 것으로 만들기, 가족들에게 헌신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듣고 내 마음속에 깊숙이 품기, 누굴 만나던 웃으며 얘기하고, 예기치 못한 친절함에 부드러워진 상대의 마음을 듣고, 나도 흐뭇해하기 등등
그렇게 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의 행복을 듣는 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걸인이나 노숙자들에게도 도움을 주게 되었다. 나도 가진 게 없던 학생시절. 길거리를 지나가다 또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돈을 구걸하는 걸인에게 내 용돈을 쪼개어 내어 주고는 그들이 만족하거나 행복해하면 내가 상대적으로 용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데도,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한 번은 저녁으로 김밥 한 줄을 사 먹으러 분식집에 들렀다가 옆에 있던 걸인이 눈에 밟혀서 내가 산 김밥 한 줄을 줘버리고는 정작 나는 저녁을 굶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도 나는 그 걸인의 행복을 내가 느꼈다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로는 내가 뭔가를 했을 때보다, 이렇게 내 주변사람이 무언가를 했을 때, 내가 더 행복한 마음이 들 때가 곧 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원격으로도 행복을 듣고자 했다. 회사를 다니고 월급이라는 것을 받기 시작한 무렵부터, 유니세프나 세이브 더 췰드런, 월드비전에 있는 극빈 아이들을 지원하는 월간 기부를 시작했다. 내 삶이 풍요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만수르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결국 나는 원격으로도 누군가의 행복이 나에게 들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나는 세상의 행복을 듣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결국 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TV를 볼 때, 감동을 느끼며 했던 말들은 어린 나에게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고, 살아가면서 주변지인들을 돕고, 친근하게 대함으로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으며, 회사를 다니며 조그마한 기부를 시작하고, 그 후원받은 사람들이 느낄 만족감까지 내가 느끼며 지금을 살고 있다. 조금은 이상하지 아니한가?
사실 이런 것들이 정상범주의 사람의 속성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는 보수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거나,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성향까지도 갖고 있다. 따라서 남들과 다른 이러한 성향이 있는 나 스스로를, 사실은 이질적이라 느끼고, 누군가가 밀어내도 좋을 '이상한 사람'도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행복함을 표현하는 말들을 들을 때, 그 마음이 나에게 전달이 되어 내가 더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 행복을 어떻게든 느끼기 위해 남들을 돕는 삶을 사는 모습이 조물주의 이치에 맞는 모습인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사실 밥 먹다가 친구 놈이 옆에서 무언가 한입 먹고 나서 '이거지~!' 하는 말조차도 나는 사랑한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남들과 다르고 정상은 아닐지라도,
또 이질적이고 세상만물과 조물주의 이치에 맞지 않을지라도
남들의 행복함을 듣고 내가 또한 행복해지는 삶이
'뭐 남들과는 다르기는 해도 나쁜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신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주변에서 항상 살펴보고, 당신의 행복을 듣기 위해 도사리고 있는 나 같은 돌연변이 사람 한 명쯤 옆에 둬도 좋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