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감각은 인간의 오감 중에 후각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던 어떤 냄새를 우연히 맡았을 때, 먼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고, 잠시 그 어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켰던 경험을...
나는 좋아하는 냄새들이 있다.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고, 왜 그 냄새를 좋아하는지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도 힘들지만, 그냥 그것들이 좋았다. 싸구려 구두약 냄새, 창고 속의 연탄냄새, 비 올 때 흙먼지가 뒤엉키며 나는 비릿한 냄새... 고급스러운 냄새들은 아니지만 지금 나이를 먹고도 그 냄새들을 어쩌다 맡게 되면 그냥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과거의 추억들이 다시 떠오르곤 한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겨울철 난방으로 연탄을 사용했다.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오는 연탄을 가는 모습도 너무나 익숙하고, 가는 방법도, 불이 꺼지고 난 뒤에 번개탄을 쓰는 방법도 나는 초등학생 저학년 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비단 이런 것뿐만 아니라 배가 자주 꺼져서 그랬는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압력밥솥으로 밥을 짓는 것이나,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었다. ) 겨울이 되면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들의 퇴근 전까지를 목표로 우리 집의 연탄을 갈았다. 물론 어머니는 내가 유해가스라도 들이킬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었는데, 나는 그런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집에 보템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스를 피해 숨을 참아가며 연탄을 갈았다. 먼저 까만 새 연탄을 창고에서 가져오고, 제일 밑에 다 타서 하얗게 재가된 연탄을 꺼내고 나머지 연탄을 순차적으로 내린 후에 제일 위에 까만 연탄을 얹고, 물통에 물이 충분한지 확인하여 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역할을 훌륭히 해낸 연탄재를 집게로 들고 밖으로 나가서 임무를 끝낸 하얀 연탄 동지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레기장에다 내다 버리면 겨울철 연탄갈기의 임무는 마무리가 된다. 연탄이 창고에서 다 떨어질 때즈음 새로운 연탄을 주문하게 되면, 수많은 연탄들이 자그마한 용달차에 실려서 집에 들어오는 풍경이 좋았다. 그리고 그 까맣고 통통한 것들이 연탄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나면, 그것들의 냄새를 맡으러 일부러 창고에 들어가곤 했었다. 당시 난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탄냄새를 좋아한다는 착각도 했었다.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 냄새가 왜 그렇게 좋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가 없다. '연탄 냄새가 나에게 풍요를 상징했었나?' 이런 생각도 잠깐 했었는데, 최근에 어쩌다 맡게 된 연탄냄새도 나에게 진심으로 기분 좋은 향기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 그것이 단순히 풍요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싶다.(누군가 내 뱃속에 기생충이 많아서 그렇다고도 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초등학생 때의 어느 날, 집에서 혼자 놀다가 어머니가 아끼시던 사기로 만들어진 물병을 실수로 깨고 자진해서 먼저 매를 맞아버리자는 생각에, 부모님이 집에 오시자마자 그 물병 값을 내가 갚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내가 그 빚 청산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바로 구두닦이. 매일 저녁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서 물병 값을 갚겠다고 그날 부모님과 협상(?)을 했었다. 사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해본 일인데, 나는 그때까지 구두닦이일을 그저 TV에서만 보고 쉽게만 생각했었다. 드라마에서의 구두닦이를 했던 연기자의 행동들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리며 구두를 닦았고, 첫 작품으로 아버지의 혹평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매일 저녁에 아버지의 구두를 닦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늘 맡았던 냄새가 있었다. 바로 말표 구두약의 냄새. 이 냄새가 왜 그런지 나는 정말 좋았었다. 말표 구두약은 검은색과, 갈색의 냄새가 미묘하게 달랐고 나는 갈색의 구두약 냄새가 더 좋았었다.(어머니는 구두약 냄새가 좋은 것은 환각성분이 조금 들어있어서 그렇다고 했었는데, 우리 또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는 말자.) 나의 첫 구두닦이 실패 이후, 나의 형편없는 구두닦기 실력에도 아버지는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구두약이 떡칠되어 광도 제대로 나지 않는 구두를 아버지는 매일 아침 신고 출근을 하셨다. 신자마자 구두약이 양말에 묻어버리는 초짜 구두닦이의 작품을 아버지는 그렇게 불평 없이 매일 신으셨었다. 처음에는 혼나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그 일은 나중에는 그날그날의 노임(100원이었던 것 같다)을 받아가며 하는 나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말표 구두약의 냄새에는 내 어릴 적 첫 알바의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서려있다. 그리고 지금생각해보면 그 당시 아버지는 조그만 아들이 무언가를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저 대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비 오는 날에 느껴지는 비릿한 비냄새는 나를 가끔 기분 좋게 한다. 그럴 때면 옛 기억이 떠오르고, 추억에 감회롭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지하철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 집에 있으면 우산 심부름을 시키는 부모님의 전화가 종종 왔었다. 그렇게 큰 우산, 작은 우산을 준비해서 시간에 맞춰서 2호선 신천역에 나간다. 신천역 지하층에서 우산 두 개를 들고 서있으면, 우산을 요청하셨던 나의 고객분이 이내 나오셔서 나를 웃으며 반겨 주셨고, 가끔 아버지는 보상으로 우리 형편에 비쌌던 바나나를, 어머니는 떡볶이나 순대를 사주셨었다. 비의 냄새는 그저 군것질거리만으로도 쉽게 설레었던 그 시절 어린아이가 비 올 때 부모님과 함께하며 느꼈던 감정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해 준다. 내가 살던 반지하집의 어두웠던 골목구석에 비 올 때 풍겼던 쾌쾌하기도 하고 꿉꿉하기도 했던 그 비 냄새가 나에게 지금까지 좋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가난했고 배고팠던 시절의 부모님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거리의 냄새, 사물의 냄새, 사람의 냄새 등... 분명 이 세상에는 나의 오래된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냄새들이 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냄새를 맡고, 생각지도 못한 그리운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사람에게도 고유의 냄새가 있다는 것.' 분명 같은 향수를 쓰고 같은 화장품을 쓰더라도 그 향기들이 그 사람의 체취와 섞이면 분명 다른 냄새가 된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완전히 같은 향을 맡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 중에 정이 많은 일란성쌍둥이인 여자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 선배들은 동아리 사람들을 안아주는 것, 즉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가끔씩 후배들을 순차적으로 안아주곤 했다.(뭐... 나도 좋았었다) 어느 날 그 선배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면서 나를 순차적으로 안아 주더니 이런 말을 했다. " **아 네 냄새 좋다. 그거 알아? 사람마다 냄새가 다 다르다는 거?", " 맞아 **이 냄새 좋아~"라고 말하는 쌍둥이 선배들의 말을 듣고 나는 당황하여 딱히 별 다른 대답을 못했었다. 그 당시에 나는 향수도 화장품도 쓰지 않는 야인과도 같은 삶을 살던 때라서 나한태서 냄새가 난다는 말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좋은 냄새라는 말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처음 그런 궁금함이 생겼다.
'나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대학생 때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향기의 진원지로 보이는 어떤 금발의 외국 여성을 쫓아갔던 적이 있다. 그 당시의 나는 그 여인을 이성으로 대하는 목적이었으면 절대로 말 걸지 못했을 쫄보였는데, 그때는 그냥 무엇에 홀린 듯 쫓아가서 대뜸 '사용하신 향수가 뭐예요?'라고 물었고 그 여인은 웃으면서 가볍게 '랄프로렌'이라고 대답했었다. 귀국하는 일정에 공항면세점에 가서 랄프로렌 매장을 찾아내 그 향기를 기억해 내고 에메랄드색 병이 그 향을 담고 있는 향수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배낭여행 기간 동안 기념품 등을 사기 위해 바게트빵에 고추장을 발라먹으며 아껴왔던 비용 중 일부를 기꺼이 그 향수 3개에 몰아주었다. 그리고 그 향수들은 한국에서 뿌려질 목적으로 나의 귀국 여정에 동행하게 되었고, 나에게 간택받은 1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내 절친들에게 나눠졌다. 그 향수들은 친구들에게 여행 기념품의 목적으로 뿌려졌지만, 친구들이 그것을 사용하고 나를 만나게 되면 분명 내가 다시 그 향기를 맡게 될 것이라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 향수를 사용한 어느 누구도 그 금발여성의 기분 좋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분명 그 여성분이 뿌렸던 향수를 산 것은 맞았지만 내 몸과 섞이거나 다른 이의 몸에 섞인 냄새는 정확히 그 냄새는 아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위적 냄새(향수, 샴푸 등) + 그 사람 본연의 냄새 = 그 사람의 특정한 향기
전날에 술을 많이 먹고 아침에 깨어나서 내 몸이 악취로 뒤덮여있는 것을 새삼 느꼈던 적이 있다. 온몸에 독이 들러붙어 있는 느낌이고, '빨리 씻어 내고 싶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 몸을 내가 더럽게 사용했으니 나쁜 냄새가 내 몸에 배어 있는 것은 자명한 것... 내가 한 행동으로 내 향기가 더러워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정제된 삶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의 냄새는 누군가 나의 기억을 소환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결론적으로, '냄새로 나를 떠올릴 사람들을 위해, 나의 향기를 가꾸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행동이 되고, 그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향기가 되고, 그 사람의 향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소환해 내는 기억의 조각이 되는 것...
나의 냄새, 향기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기억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삶에서, 나의 냄새는 어떤 이에게는 나쁜 기억을 주었고, 어떤 이에게는 좋은 기억을 주었을 것이다. 그 냄새가 그간 향기로웠는지는 불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 대놓고 악취가 난다고 말하는 이를 살면서 쉽게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그도 그럴것이 젊었을 때는 내가 풍기는 인위적 향기에 대한 집착을 했었다. '내가 좀 더 향기로웠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한다. '냄새로 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그저 좋은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앞으로의 인생에서 나의 행동들을 완벽하게 잘 컨트롤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내 생각과 행동이 나의 냄새로 귀결된다고 해도 분명 그렇게 좋은 향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향기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것은 노력 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냄새든 아니든 나의 냄새로 사람들이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항상 온전하게 나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르게 살고, 매사 성실하게 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낮은 곳을 향하고, 주변을 두루두루 위하는 삶으로 방향을 잡고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그러한 삶들이 모여 다른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내가 일전에 느꼈던 배낭여행에서의 금발여인의 향기나, 아련한 과거의 추억이 담긴 냄새들의 감흥까지는 못 미치겠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향기가 되어 있을지도... 그리고 훗날 나에게도 이런 요행이 있지 않을까 한번 상상해 본다. 어느 날 누군가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문득 좋은 향기를 맡고, 그 향기로 나를 떠올리고, 나와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하는 것...
당신에게는 무슨 향기가 나는가? 그리고 그 향기는 남들에게 어떤 기억이 될 것인가?